SK하이닉스(000660)에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장비인 TC본더를 독점 공급하며 성장해 온 한미반도체(042700)가 변곡점을 맞았다.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에 420억 원 규모의 TC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독점 체계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이 두 자녀에게 726억 원 규모의 지분을 증여하며 3세 승계를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러스트 = ChatGpt 달리

◇SK 독점 흔들리나…한화세미텍과 공급 계약 체결

한미반도체는 1980년, 곽동신 회장의 부친 곽노권 전 회장이 설립한 한미금형을 모태로 한다. 이 회사는 지난 8년간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단독 공급하며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SK하이닉스가 한미 측과 특허소송 중인 한화세미텍과도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협력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이에 한미는 공급 단가를 28% 인상하고 기술인력을 철수하는 강수를 뒀지만, 주가와 기관 수급 모두 약세를 보이며 불안이 확산됐다.

핵심 제품인 ‘열압착(TC, Thermal Compression) 본더’는 HBM 생산 과정에서 열과 압력을 가해 D램을 결합하는 장비다. HBM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 장비 중 하나다.

한미반도체는 2017년부터 SK하이닉스에 TC본더를 단독 공급해 왔다. 2024년 한 해에만 총 2573억 원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1월에는 108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래픽=정서희

◇ 곽동신 회장, 父로부터 지분 증여...누나들 제치고 막강한 1인자로

현재 한미반도체는 곽동신 회장을 중심으로 확고한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곽 회장과 누나, 아들, 숙부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다 합치면 54.84%에 달하며, 그 중 곽 회장은 34.01% 지분을 보유해 확고한 최대 주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곽 회장이 처음부터 확고한 1인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것은 아니다. 한미반도체가 코스피에 상장할 당시인 2005년, 곽 회장의 지분율은 2.59%에 불과했다.

곽 회장은 두 차례에 걸친 수증 끝에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2007년 9월 곽 회장은 곽 전 회장으로부터 240만주를 받으며 지분이 12.6%로 높아졌고, 이후 2008년에는 378만주를 받아 지분율이 27.42%로 오르며 최대 주주가 됐다.

곽 회장은 4녀1남 중 막내다. 회사측은 승계 과정에서 누나들과 다툼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상속 당시 (지분 대신 여러 자산을 나눠서) 똑같이 받아서 (불만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누나들은 개인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곽 회장 취임 이후 주가가 많이 올라 오히려 고마워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곽 회장은 현재 높은 지분율을 바탕으로 지분 60%를 보유한 곽신홀딩스를 비롯해 한미베트남, 한미타이완 등 총 6개 비상장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 두 아들에 726억 지분 증여…곽 회장 3세 승계 밑그림

곽 회장은 내달 22일 장남 호성씨와 차남 호중씨에게 각각 48만여 주(총 726억 원 상당)의 지분을 증여할 예정이다.

두 자녀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소액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번 증여로 각 2.55%까지 지분율이 확대된다. 이에 따라 현재 23세, 16세인 두 아들의 주식 가치는 23일 종가(8만5600원) 기준 각각 2107억 원으로 늘어난다.

다만 자녀들의 나이를 감안할 때 본격적인 경영 승계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지속된 지분 승계에 대해 “부모가 가진 재산의 일부를 승계하는 정도이며, 승계 논의는 아직”이라고 했다.

◇ 본업 위기인데 명품 사업 논란...주가 3분의 1 토막

이런 상황에서 곽 회장과 한미반도체가 지분을 보유한 곽신홀딩스가 명품 시계 브랜드 ‘제이콥앤코’ 유통에 나서면서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시계 유통 사업은 본업과의 시너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18만 원까지 치솟던 주가는 이달초 6만 원까지 하락, 3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한 개인 투자자는 “본업과 무관한 시계 장사보다 지금은 반도체 경쟁력 강화와 주가 회복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과제는 SK하이닉스와의 관계…고객 다변화 필요

여기에 더해 한미반도체가 직면한 중대 과제는 SK하이닉스와의 거래 관계 재정립이다. 최근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과 손잡고 420억 원 규모의 HBM용 TC본더를 도입한 것은 급증하는 HBM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는 그동안 독점 공급 구조에 의존해온 한미반도체 입장에서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론 등 다른 반도체 업체로의 고객 다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주들의 불안이 커지자, 한미반도체는 지난 22일 예정되어 있던 기업설명회(IR)를 돌연 취소하고 1분기 실적발표일인 5월 15일 이후에 IR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HBM 제조사 입장에서는 장비사를 다변화하며 공급의 안정성을 가져가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한미반도체도 고객사 다변화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고, 기술력 혁신을 통한 성장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