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생산기지를 둔 국내 스마트폰 부품 업체 A사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사는 베트남 현지에서 카메라 모듈 등 스마트폰 부품을 생산해 삼성전자(005930)의 베트남 공장에 납품해 왔다. 해당 부품이 탑재된 스마트폰은 주로 미국 시장으로 수출되는데, A사가 만든 스마트폰 부품이 미국으로 간접 수출되는 셈이다.
A사 사장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의 부품도 중국, 베트남, 인도 등에서 생산돼 수출되는 구조라 다른 중국, 일본, 대만의 스마트폰 기업처럼 트럼프발(發) 관세 영향을 받는 것은 똑같다”면서도 “관세 폭탄으로 인한 제품 가격 인상에 따른 수요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을 지켜보면서 고객사와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베트남 공장 가동률이 70%이고 미국 인력비 등을 고려하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새로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산업용 펌프를 생산하는 B사도 피해를 보는건 마찬가지다. B사는 캐나다 업체를 통해 미국에 매년 연초 산업용 펌프를 납품하는데, 관세 불확실성 탓에 4월이 되도록 수출 계약 소식이 없다. 이 회사가 매년 캐나다에 수출하는 규모는 70만~100만달러로, 한화로 약 10억 원에서 14억 원 정도다. 미국 쪽 신규 구매자와 샘플 테스트도 마쳤지만, 이마저도 진전이 없다.
충청남도에서 반도체 제조 장비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C사도 관세로 인해 타격을 받고 있다. C사는 국내 대기업의 멕시코 현지법인에 반도체 제조 장비를 납품하는데, 미국의 관세 부과로 납품이 무기한 지연되고 있다.
8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국내 수출 중소·중견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일 한국에 대해 10% 보편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9일 15%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총 25%의 관세가 적용될 예정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기지인 베트남에도 46%의 관세를 부과한다.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중소기업은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한국 중소기업의 미국 수출액 비중은 전체 수출액의 16.3%에 달한다. 2024년 수출액도 전년 대비 11.2% 증가한 187억4000만달러(약 27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일수록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삼성이나 현대차(005380) 등 대기업도 대응이 어려워 주가가 폭락하고 있는데,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관세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중기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철강·알루미늄 제품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41.8%는 “미국 관세정책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대기업과 협력하는 수출 중소기업의 피해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현대차가 미국에서 2026년까지 가격을 안 올리겠다고 한 것처럼 대기업이 관세를 감수하겠다고 하면, 결국 협력 중소·중견기업들의 납품가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세로 인한 중소·중견기업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협상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조 교수는 “관세가 적용되면 전 세계 공급망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렵다”며 “정부를 중심으로 협상해야 한다”고 했다.
‘수출 다변화’를 통해 관세의 위기 요인을 기회 요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중국, 베트남 3개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다. 3개국의 수출액을 합치면 전체 수출액의 42%에 달한다.
유 원장은 “관세가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중국 등 다른 나라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이들도 마찬가지로 수출을 다변화하려는 요구가 있을 것”이라며 “중국이 발 빠르게 유럽을 공략한 것처럼 한국도 빠르게 수출 다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