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내국인을 위한 관광 인프라 개발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내국인이 수요가 활성화될 때 외국인 관광객의 관심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남기덕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한국·베트남·필리핀 지역 담당 대표는 지난 13일 서울 JW메리어트 동대문에서 진행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 차원의 지역 관광 개발이 이뤄져야 내국인 수요가 확대되고, 이를 통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 대표는 1985년 신라호텔에 입사한 후 40여 년간 호텔업계에 종사한 베테랑이다. 2018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한국 지역 담당이 된 그는 현재 한국, 베트남, 필리핀 지역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사이판, 몽골, 팔라우 지역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1927년 설립된 메리어트는 144개국에서 9500개 이상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가 거느린 호텔 브랜드는 리츠칼튼, 페어필드, 쉐라톤, W 등 31개에 달한다. 회원 관리 프로그램인 ‘본보이(Bonvoy)’ 가입자는 2억2000만명이 넘는다. 국내에선 15개 브랜드, 36개 호텔을 운영 중이다.
메리어트는 코로나19 종식 후 해외여행 등 관광 수요가 증가하면서 호실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APEC) 지역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올해 1분기 글로벌 RevPAR(객실당 평균 매출)가 전년 대비 4.1% 증가한 가운데, APEC 지역은 11%의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APEC 지역에서 109건의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메리어트가 APEC 지역에서 약 7만7500객실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게 됐다. 국내에도 올해 코트야드 메리어드 평택과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가 개점을 앞두고 있다.
남 대표는 “지난 4~5년간 한국의 성장률이 제일 높았다”면서 “과거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에 묶인 마이너리티 국가였으나, 이젠 여러 지역을 관리하는 위치가 되었다”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고 했다. 다음은 남 대표와의 일문일답.
―1분기 APEC 지역의 성과가 좋았다. 한국 지역의 위상도 달라졌다고.
“최근 4~5년 사이 한국의 호텔 객단가(고객당 구매액)가 50% 정도 올랐다. 호텔 이용객 증가와 함께 강달러 등이 영향을 미쳤다. 호텔에 대한 인식이 바뀐 영향도 컸다. 과거 호텔은 사치스러움의 대명사였지만, 요즘엔 내국인도 주말이 되면 호텔에 쉬러 올 만큼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휴가)가 보편화됐다. 코로나19 기간 전 세계 호텔들이 위기를 겪었지만, 국내에선 호캉스가 대중화되면서 빨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20~30% 수준이던 내국인 투숙객 비율도 40% 수준으로 증가했다.
K컬처의 위상이 높아진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동남아에서 한국 드라마와 K팝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 여행 수요가 증가했다. 2018년 한국 지역 담당으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호텔 수가 20여 개였으나, 지금은 40개 가까이 늘었다. 인프라가 조성되면서 하루 숙박료 50만원이 넘는 럭셔리 호텔도 늘고 있다.”
―호텔 수익을 최적화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추진했나.
“20여 년간 해외 호텔에서 일하다 2018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호텔 객단가가 변하지 않았더라. 전염병(사스, 메르스, 코로나19)과 사드 배치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수요 감소와 가격 경쟁이 심화하면서다.
이에 항공사의 로열티 프로그램과 유사한 호텔 로열티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 극대화를 꾀했다. 호텔은 항공과 마찬가지로 수요가 늘어나도 객실을 늘릴 수 없다. 제한된 캐파(CAPA〮수용력)에서 매출을 늘리는 방법은 단가 조정밖에 없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수익(Revenue)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통해 수요에 맞춰 하루 네 번 가격을 조정해 가격을 최적화했다.
무조건 객단가를 올리는 게 아니라, 자사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수익을 최적화했다. 메리어트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다른 OTA(온라인 여행예약 플랫폼)보다 저렴하게 숙박료를 판매한다. 만약 다른 플랫폼보다 비싸게 팔았다면, 차액을 보상한다. 또 20년 이상 지속된 회원 관리 시스템을 통해 추가 할인 및 적립 혜택을 제공한다. 국내의 경우 메리어트 웹사이트에서 이뤄지는 직접 예약 비중이 46%에 달한다. 전체 투숙객 중 70%는 본보이 회원이다. 업계에서는 직접 예약 비중 증가가 투자자 유치 및 호텔 매니지먼트 계약 체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호텔 사업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조직관리 비결이 있다면.
“메리어트 호텔은 창업 초부터 ‘사람을 최우선으로(Put People first)’라는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직원들이 공정하게 대우받으며 성장할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각 호텔의 총지배인과 핵심 중역들의 변화가 없는 이유도 이런 문화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서다.
여성 인력도 적극 육성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 여성 총지배인 8명을 뒀고, 이 중 2명은 현재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다. 충분히 전문성이 있지만, 기회가 없었던 분들을 승진시켰다. 여성들은 디테일을 더 꼼꼼히 보고, 직원과의 소통에도 유리한 장점이 있다. APEC 지역에서도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Diversity, Equity, Inclusion)을 촉진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APEC 지역 내 관리직의 약 36%, 총지배인 중 6명 중 1명이 여성이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호스피탈리티(환대)란 무엇인가.
“호텔은 직원, 서비스, 고객, 커뮤니티 등 4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나는 직원 만족도 향상을 통해 서비스 질이 개선되고, 고객 만족이 증대된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직원 평가를 하더라도 누가 봐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투명하고 공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평가도 내가 하지 않고, KPI(핵심 성과 지표) 계산하는 법을 직원들에게 공유해 본인이 평가하게 한다. 나(대표)에게 잘 보일 게 아니라, 직원 스스로 성과를 달성하게 하는 것이다.
지역사회 공헌 활동을 통한 지역 커뮤니티와의 상생도 중요하다. 김장 나눔, 연탄 배달 등 연례행사를 열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구순구개열 수술 지원 등을 통해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선순환되면 비즈니스는 자연스레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호텔은 ‘종합 예술’이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부서들이 존재한다. 다른 곳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분야만 봐선 안 된다. 직원들에게도 주변에서 하는 일을 눈여겨 보고, 직접 해봐야 이를 밑거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호텔 시장 전망과 신규 브랜드 진출 계획은?
“호텔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비즈니스 투숙객 중심에서 개인의 힐링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휴식처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고급 호텔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APEC 지역에선 1분기 럭셔리 부문 매출이 13% 증가하며 실적을 견인했다.
국내에서도 고급 브랜드 호텔 유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과거엔 낮은 호텔 단가로 인해 고급 브랜드 유치가 어려웠으나, 최근 호텔 인프라 개선과 단가 상승으로 럭셔리 호텔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는 추세다. 현재 럭셔리 호텔을 비롯해 여수, 부산 등 지방 출점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서울과 지방의 관광 인프라 격차가 크다는 점은 아쉽다. 우리나라가 관광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내국인을 위한 관광 인프라 개발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이 찾는 곳을 외국인들도 가보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일 만큼 아름다운 곳이 많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역 관광 개발을 통해 사람을 모으면, 지역 상권도 발전할 수 있다. 호텔 하나만 들어서도 고용 창출과 지역 식자재 조달, 객실 운영에 따른 지역 서비스업 활성화 등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가 생긴다.”
―향후 목표는.
“한국이 단순한 실적을 넘어, 호텔 산업에서 마이너리티가 아닌 아시아 중심 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