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를 맞아 유통업계가 ‘초저가 경쟁’에 한창이다. 파격적일 정도로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을 선보여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고 매출을 늘리려는 것이다. 유통업계가 초저가 제품을 출시한 건 소위 ‘가격 역설계’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 전략은 상품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최저 판매가를 정하고 지속 가능한 원가 구조를 만드는 내용이다.

이마트가 최근 선보인 초저가 위스키 ‘저스트 포 하이볼(왼쪽)'과 편의점 CU가 출시한 PB제품 '득템라면'. /이마트·BGF리테일 제공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편의점 등 소비자들과 접점이 많은 유통 채널에서 초저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마트(139480)는 최근 5980원짜리 초저가 위스키 ‘저스트 포 하이볼’을 출시했다. 하이볼 제조용으로 출시된 제품으로 현재 시판 중인 위스키 원액 중에서 가장 저렴하다. 하이볼 1잔(335㎖) 기준 해당 위스키로는 하이볼 8잔을 만들 수 있다.

롯데마트는 내달 2일까지 통큰치킨(1마리)을 5000원 특가로 판매하고 있다. 2010년 처음 통큰치킨이 출시됐을 때와 같은 가격이다. 롯데마트는 1000원짜리 PB(자체 브랜드) 두부와 콩나물도 선보였다. 일반 상품 대비 50% 저렴해 해당 상품군에서 판매량 상위 5위 안에 들 정도로 인기 품목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최저 판매가를 정하고, 해당 판매가를 기준으로 마케팅 비용·부대 비용을 줄이고 이윤·마진을 최소화하는 등 가격을 낮추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경기 회복 전까지는 실속형 소비를 할 게 분명한 만큼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편의점도 PB 상품으로 초저가 경쟁을 한창 이어가는 모습이다. BGF리테일(282330)이 운영하는 편의점 CU가 출시한 저가 PB제품 ‘득템라면’은 480원에 판매되고 있다. 봉지당 가격이 1000원 안팎인 라면 제품들보다 50%가량 저렴한 셈이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해당 상품의 6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5% 증가했다. 2021년 4월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은 700만개에 달한다. 880원 컵라면 육개장·880원 가공유(乳)·990원 삼각김밥 등도 출시된 상태다.

편의점 GS25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GS리테일(007070)에 따르면 지난해 출시한 PB라면 ‘면왕’의 누적 판매량은 100만개다. 중량을 기존 대비 22% 늘리고 가격은 990원에 맞춰서 판매하고 있다. 먹는 제품 외에도 싸이닉 수분 톤업 선크림·이츠비 레이샷 100·이즈앤트리 어니언 프레쉬 겔크림 등 3000원대 가성비 화장품도 선보이고 있다.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한 시민이 편의점 간편식을 먹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이처럼 유통업계가 초저가 상품을 출시할 수 있었던 배경엔 ‘가격 역설계’ 전략이 있다. 가격 역설계는 판매 가격을 먼저 설정하고 지속 가능한 원가 구조를 적용하는 전략이다. 원가와 이윤에 따라 판매가를 정하는 통상적인 가격 책정 방식을 거꾸로 뒤집은 개념이다.

유통업계가 가격 역설계 전략을 선택한 건 고물가 기조로 인한 소비 심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살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요소가 ‘저렴한 가격대’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와 불황으로 소비 침체가 심해진 상황인 만큼 너나 할 것 없이 유통업계가 고육지책으로 초저가 경쟁에 뛰어든 것”이라고 했다.

유통업계는 고물가 기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가격 역설계 전략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초저가 제품을 출시하면 그 자체로 광고도 되고 싼 만큼 많이 구매하기 때문에 ‘박리다매’할 수 있다”며 “경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가성비·실속형 소비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초저가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격이 싼 만큼 수익성은 악화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많이 팔겠다는 의미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장기 불황으로 발을 끊은 소비자들을 유치하려는 일종의 유인책이다. 초저가 제품을 구매하면서 마트나 편의점에 비치된 다른 제품들도 사는 등 소비 진작 효과도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초저가 경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