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류 기업 디아지오(Diageo)가 자사 테킬라 제품에 ‘100% 아가베’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이 허위광고에 해당한다는 의혹에 따라 미국에서 집단소송에 휘말렸다. 문제가 된 브랜드는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가 공동 창업한 것으로 유명한 ‘카사미고스(Casamigos)’와 멕시코 프리미엄 테킬라 ‘돈 훌리오(Don Julio)’다. 돈 훌리오는 디아지오코리아를 통해 한국 면세점과 주류 쇼핑몰에서도 판매되는 제품이다.

뉴욕 맨해튼의 한 상점에 진열된 돈 훌리오 제품. 이 제품은 국내에서도 판매된다. /로이터 연합뉴스

20일 로이터 등 외신을 종합하면 관련 소송이 지난 5월 미국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 접수됐다. 원고 측은 디아지오가 판매하는 두 테킬라 브랜드에 ‘테킬라 100% 아가베(Tequila 100% de Agave)’, ’100% 아가베(100% de Agave)' 등이 표기돼 있지만 실제로는 사탕수수나 옥수수 등 다른 식물에서 유래한 성분이 상당량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디아지오가 미국이나 멕시코의 규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 소비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원고는 디아지오에 대해 500만달러(한화 약 69억원) 이상의 손해배상과 함께 허위광고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테킬라의 순도 논쟁은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면서도 “이번 소송은 해당 논쟁이 처음 법적 쟁점이 된 사례다. 과학적 분석, 소비자들의 투명성 강화 요구가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블루 웨버 아가베(Blue Weber Agave)라는 특정 품종의 식물만을 원료로 사용하는 100% 아가베 테킬라는 수확까지 최소 7~8년이 걸리고 생산 효율이 낮아 일반 테킬라보다 가격이 높다. 이에 따라 ‘100% 아가베’ 표기는 소비자에게 품질과 정통성을 담보하는 기준이 된다. 원고 측은 “라벨 표기가 정확했다면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가격을 주고 해당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테킬라는 사용된 당분의 출처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된다. 100% 아가베 테킬라는 아가베에서 나온 당만을 사용한 제품으로, 병입도 반드시 멕시코 현지에서 이뤄져야 한다. 반면 저가형 테킬라인 ‘믹스토(Mixto)’는 전체 당분의 최소 51%만 아가베에서 유래하면 된다. 나머지 성분은 사탕수수나 옥수수 시럽 같은 저가 탄수화물로 대체할 수 있다.

원고 측은 과학적 근거로 NMR(핵자기공명 분석)과 IRMS(동위원소비 질량분석)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이 분석들은 음료에 포함된 당분의 분자 구조와 탄소 동위원소 분포를 통해 아가베와 사탕수수·옥수수에서 유래한 당분을 구분할 수 있다. 이 기법은 위스키의 숙성 기간 판별, 와인의 빈티지 확인, 꿀의 원산지 추적, 올리브유의 품종 식별 등에도 활용된다. 원고 측은 해당 실험을 통해 디아지오 제품에서 사탕수수 또는 옥수수에서 유래한 성분이 검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디아지오는 즉각 반박했다. 디아지오는 “문제의 제품들은 멕시코 테킬라 규제위원회(CRT)와 미국 주류·담배·총기국(TTB)의 정식 인증을 받은 ‘100% 아가베 테킬라’”라며 “모든 생산 공정과 원료는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티븐 러스트(Stephen Rust) 미국 디아지오 스피릿 부문 대표는 해당 소송에 대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고, 업계를 모욕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CRT 인증은 멕시코 내에서 효력을 갖지만, 미국 법원은 별도의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허위표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CRT의 인증 시스템 자체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CRT의 인증은 생산자의 공정 문서와 일부 병 샘플, 라벨 표시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실제로는 소량의 혼합이 있어도 인증을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아가베 농가 내부에서도 CRT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현지 농민 단체는 “대형 수출업체들이 사탕수수 알코올을 혼입한 테킬라를 CRT가 묵인하고 있다”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규제 기관의 구조 개편과 제3자 감시 기구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이날 현재 해당 사건은 미국 연방법원에서 증거 개시(discovery) 절차에 돌입했다. 향후 사탕수수 성분 검출의 과학적 신뢰성, 혼합 비율의 법적 기준, CRT의 인증 절차 및 투명성, 디아지오의 품질 관리 체계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국제 주류 산업 전반의 ‘100%’ 표기 기준과 광고 관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소송이 단순한 상표 분쟁을 넘어, 글로벌 주류 업계의 라벨링 신뢰성과 국제 인증 체계의 정합성을 둘러싼 문제로 확대되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제품 성분의 진위 여부를 넘어 100%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각국 법률과 인증이 어떻게 상이하게 해석되는지를 보여준다”라며 “미국 법원이 이를 허위표시로 판단한다면 다른 국가의 인증 체계보다 강력한 소비자 보호 기준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