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렇게 많이 살 생각은 없었다. 수박과 참외만 사려고 했는데, 토마토와 양배추, 당근까지 카트에 담아버렸다.”
지난 29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마포구의 한 홈플러스 매장. 최은순(67)씨는 “기온이 올라가 남편 몸보신을 위해 삼계탕을 해줄 생각이었다. 찹쌀을 할인하길래 얼른 샀다. 가격이 싸니까 홀린 듯 이것저것 사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씨 쇼핑 카트의 절반은 수박과 참외를 포함한 국내산 제철 과일과 채소로 채워졌다.
매장 내 농산물 코너 앞에는 ‘밥상 물가 안정’ 할인 행사를 알리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제철 과일·채소 진열대 위엔 빨간 글씨로 할인된 금액이 적힌 가격표가 걸려 있었다. 홈플러스 직원 임 모(46)씨는 “최근 국산 과일과 채소를 사는 고객들이 늘었다. 체감상 20~30% 증가했다”라고 했다.
이 할인 행사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지난 22일부터 진행한 것이다. 정부의 ‘농축산물 할인 지원’ 추경예산 1200억원 중 일부가 투입됐다. 정부는 이 예산으로 전국 온·오프라인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국산 농산물 할인을 지원한다. 유통업체가 20% 할인 판매하면 정부가 소비자 구매가의 20%를 업체에 지원해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고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 행사는 제21대 대통령 선거일(3일) 다음 날인 내달 4일까지 진행된다.
같은 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의 한 롯데마트 매장 내 수박 코너에도 인파가 몰렸다. 밥상 물가 안정 행사에 맞춰 20% 할인한 가격에 카드 제휴 할인까지 적용하면 2만5000원짜리 수박을 1만3720원에 살 수 있었다. 대학원생 김현지(30)씨는 “평소였으면 지갑 사정을 생각해서 수박은 절대 안 샀을 것”이라며 “거의 반값이라 구매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이마트 매장에도 밥상 물가 안정 할인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은 상태였다. 이마트 직원 박 모(45)씨는 “할인하니까 수박과 참외 등 제철 과일을 중심으로 판매가 잘 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행사는 장기 불황 속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할인 행사가 진행된 지난 22일부터 28일까지 판매된 성주 참외 매출은 직전 주 대비 72% 증가했고, 남원 복숭아와 대추 방울토마토는 전주 대비 매출 증가율이 각각 315%, 54%에 달했다. 서리태 매출도 전주 대비 각각 210% 증가했다. 롯데마트도 수박·참외 등 제철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행사 전보다 5%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국산 제철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사 가는 분위기”라며 “경기가 어려워 다들 지출을 줄이려고만 하는 상황에서 정부 예산을 통한 할인 지원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근 유통업계는 대선 후 소비 심리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1.8이다. 직전 달에 비해 8.0포인트(p) 올랐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보다 높으면 과거 장기 평균(2003~2024년)과 비교해 소비 심리가 낙관적이고, 반대로 100 아래면 비관적이라는 뜻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5월을 제외하면 1월부터 11월까지 모두 100을 상회했지만, 12월 계엄 사태 이후 88.4로 급락했다. 지난달까지 계속 90대에 머물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선 후 새 정부가 민생 안정·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한다”며 “정부의 이번 할인 행사 분위기가 대선 후에도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