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의 음색을 과학의 언어로 풀면 ‘공명(Resonance)’이다. 현을 활로 문지르면 현의 진동 에너지가 바이올린의 브리지를 통해 몸통으로 전달된다. 현이 본래 갖고 있는 고유 진동수에서 진동이 점점 커져 몸통의 고유 진동수와 비슷해지면, 몸통이 강하게 반응하며 진동이 증폭된다. 현과 몸통의 진동수가 비슷할수록 소리는 크고 풍부하게 울려 퍼진다. 바이올린 특유의 맑고 깊은 음색은 바로 이 공명에서 비롯된다. 첼로나 기타 등 다른 현악기들도 마찬가지다.

공명은 단순히 진동을 키우는 현상을 넘어 서로 다른 존재가 완벽하게 어울릴 때 나타나는 자연의 조화다. 작은 울림이 모여 하모니가 되고, 그 하모니는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미국 레조낭스(Résonance) 와이너리는 이름 자체가 프랑스어로 공명을 뜻한다. 지난 2013년 프랑스 부르고뉴의 대표 와이너리 루이 자도(Louis Jadot)가 오리건주 윌라멧 밸리(Willamette Valley)에 세웠다. 150년이 넘는 루이 자도 역사상 처음으로 부르고뉴 밖에 세운 와이너리다. 공명이라는 이름에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메이킹 철학이 조화를 이루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셈이다.

레조낭스의 와인 제조 방식은 루이 자도에서 42년간 수석 와인메이커로 활약한 자크 라드리에르(Jacques Lardière)의 영향이 크다. 현재 레조낭스 와인메이커인 기욤 라르주(Guillaume Large)와도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라드리에르는 그동안 여러 인터뷰를 통해 포도와 토양, 그리고 인간의 손길이 맞물려 서로를 울릴 때 비로소 좋은 와인이 태어난다는 자신의 철학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는 양자물리학, 에너지, 진동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레조낭스 와이너리의 설립 과정에서는 ‘장소의 에너지’를 강조하며 대량 생산보다 소규모의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픽=손민균

‘레조낭스 윌라멧 밸리 피노누아’는 그가 부르고뉴에서 쌓은 수십 년의 경험을 오리건에 이식한 결과물이다. 레조낭스 윌라멧 밸리 피노누아는 윌라멧 밸리 내 명성 높은 다양한 포도밭에서 선별한 피노누아를 블렌딩했는데, 이는 부르고뉴 전통을 적용한 방식이다.

부르고뉴 와인은 주로 한 종류의 포도 품종만을 사용한다. 되도록 단일 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지만, 여러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블렌딩하더라도 한 품종을 사용한다. 이 같은 방식은 각 포도밭의 장점을 조화롭게 담아내 복합적인 풍미를 준다. 다양한 과실 향과 꽃 향, 흙 내음 등 여러 노트가 층층이 쌓인다.

레조낭스는 화학 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고수한다. 포도는 손수 수확 후 엄격히 선별하며 15개월간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루이 자도 자체 오크통 제조사 ‘카뒤(Cadus)’에서 제작한 맞춤형 프렌치 오크통을 사용한다. 오크통 종류, 사용 방식, 숙성 기간까지 부르고뉴에서 검증된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윌라멧 밸리는 해양성 기후와 태평양 바람, 그리고 코스트 산맥과 캐스케이드 산맥의 영향으로 서늘하고 일교차가 큰 환경이 특징이다. 포도가 성장하는 여름에는 비가 적고, 재배 시기에는 하루 일조량이 15시간에 달해 포도가 천천히, 건강하게 익는다. 피노누아는 부르고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품종이지만, 윌라멧 밸리는 이 같은 기후와 다양한 화산성·해양성 토양이 어우러져 ‘피노누아의 천국’이라고도 불린다.

레조낭스 윌라멧 밸리 피노누아를 잔에 따르면 밝고 투명한 루비빛이 돈다. 코에서는 야생 딸기, 라즈베리, 멀베리, 장미, 바이올렛 등 풍부한 아로마가 피어나고, 바닐라와 감초, 삼나무의 섬세한 향이 어우러진다. 입에서는 블랙체리와 크랜베리 같은 검은 과실 풍미가 두드러지며, 존재감 있는 타닌이 부드럽고 균형감 있게 조화를 이룬다. 미네랄의 생동감 있는 뉘앙스가 긴 여운과 함께 깔끔하게 이어진다. 섬세하고 균형 잡힌 구조, 그리고 활기찬 산도와 긴 피니시가 인상적이다.

2021 빈티지는 미국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2023년 선정한 세계 톱100 와인 중 9위에 올랐다.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레드 와인 신대륙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신세계엘앤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