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는 부모 대신 손주를 키워주는 조부모가 늘면서 여행사 프로그램에도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가 지난해 말부터 내놓은 ‘스킵젠 투어’가 대표적입니다. 스킵젠 투어는 부모 세대(Generation)를 건너뛰고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뜻합니다. 한글로는 조손 여행인 셈입니다.
1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하나투어는 지난해 스킵젠투어 맛보기 상품으로 홍콩 여행 프로그램을 내놨다가 최근 프로그램을 확대했습니다. 중국 서안·백두산, 일본 도쿄·오키나와, 베트남 다낭·나트랑, 호주 시드니 등 17개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모두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투어는 지난해 필리핀부터 스킵젠 투어를 시작했다가 겨울철 휴양지 등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했습니다.
여행사가 앞다퉈 이런 여행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이유는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소위 ‘황혼육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손을 빌리는 것이 못 미더워 육아를 도맡았다가 손주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도 육아를 이어가는 조부모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2019년 이후로 육아를 하는 조부모를 위한 교육에 매년 나설 정도로 그 수가 늘었습니다.
손주를 돌보는 세대가 1955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라는 점도 스킵젠 투어가 생기는 이유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후 이전과는 다른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적 부를 축적한 경우가 많고 예전과 달리 체력적으로도 좋은 편이라 해외 여행을 나설 여력이 있는 세대로 꼽힙니다.
스킵젠 프로그램은 조부모와 손주를 두루 배려해 일정을 꾸린 것이 특징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했다는 점입니다. 홍콩에서는 딤섬 만들기 클래스에 함께 참여하고 중국 서안에서는 병마용 인형 만들기를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선택관광으로 여행의 자유도도 높였습니다. 조부모가 여행 중 체력적으로 힘들 것을 대비한 결과입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프로그램을 짜면 공감이 이뤄지면서 여행 프로그램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계산도 깔렸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단체여행을 할 때 어린아이를 동행하는 것에 대한 시선이 불편할 때도 있는데 스킵젠 프로그램으로 함께하면, 이런 걱정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쓴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도 스킵젠 여행이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책에서는 10대인 알파세대와 20대 초중반인 Z세대가 부모님을 제외하고 조부모와 함께 여행을 즐기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지난해 내부 직원 및 협력사 직원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여행상품 공모전’ 본선에 진출한 아이디어를 상품화한 것인데 실제로 프로그램을 운영해 봤더니 반응이 좋았다”면서 “다른 여행 프로그램 대비 30~50%가량 가격이 비싸지만 이런 여행을 원하는 수요층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스킵젠 여행으로 추정되는 여행객의 1~2월 예약률은 전년 동기 대비 230% 증가했다”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액티브 시니어인 조부모가 손주와 함께 여행하거나, 3대가 함께 여행하는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