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소주는 7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이 즐겨 마시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안동엔 안동소주를 표방하는 양조장이 9곳 있습니다. 행여 안동소주의 명성에 안주해, 품질향상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양조장 명맥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안동소주가 갖는 원천 기술은 그대로 두되,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끔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하는 건 양조장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동시는,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과감한 설비투자를 하겠다는 양조장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경북 안동시가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드물게 전통주산업 지원에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안동시는 경북도와 손잡고 작년 4월, 안동소주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안동지역 9개 양조장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안동진맥소주를 만드는 맹개술도가 박성호 이사가 안동소주협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안동시는 경북도와 함께 앞으로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안동소주 세계화에 투입하기로 했다. 지자체가 나서서, 지역의 전통주 업체들을 한데 모아 협회 결성을 추진하고 또 세계화(수출)에 적극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자체가 앞장서서, 전통주 테마파크를 추진하는 곳도 안동이 유일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구 안동역사에 들어설 전통주 테마파크는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과 특히 안동소주를 비롯한 전통술 상설 전시, 판매장이 대규모로 들어서, 안동을 대표하는 새 관광명소가 될 전망이다. 안동시는, 오는 3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국제주류박람회에도 안동소주 부스를 마련, 안동소주 알리기에 적극 나설 참이다.
2022년 7월, 31대 안동시장으로 부임한 권기창 안동시장을 만나,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 안동소주 세계화에 대한 포부와 전망을 물었다. 권 시장은 700년 역사를 가진 안동소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내비치면서도, 국내 전통주 시장에서 안동소주 점유율이 그리 높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안동소주가 명성에 걸맞는 품질,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술 향과 맛을 갖고 있는지,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양조장들이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직후부터 추진 중인 전통주 테마파크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구 안동역사 활용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던 중 안동소주 세계화 일환으로 이곳에 전통주 테마파크를 추진하기로 했다. 구역사 플랫폼을 활용해, 안동소주를 비롯해 안동지역 농산물을 전시, 체험, 판매하는 공간을 조성하게 된다. 지금껏 안동지역 전통주를 한데 모아, 전시와 판매를 겸한 공간을 운영하지 않았는데, 전통주 테마파크가 들어서면 안동소주는 물론, 전국의 모든 전통술도 한데 소개할 작정이다. 올해 안에 용역을 실시해 테마파크 사업추진 방향과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향후 4~5년 정도 걸리는 프로젝트다.”
-안동소주 지원에 적극적인 이유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이 안동소주라고들 흔히 얘기하는데, 과연 안동소주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이 맞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늘 갖고 있다. 선비와 양반의 고장인 안동은 ‘봉제사 접빈객’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어, 음식 문화가 많이 발달해 있다. 또, 술은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조상들이 물려준 요리책에는 음식 외에 전통술 주방문(레시피)이 많이 기록돼 있다. 그 중심에 안동소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좀 더 산업화시켜야 한다, 관광자원화 해야 한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안동소주의 역사가 오래이긴 하지만, 대부분 가양주 형태로 전해져와 산업화 단계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국과 비교하면 더 또렷해진다. 일본에 가면 대부분 사케를 먹거나 사온다. 중국 가면 마오타이를, 유럽 가면 위스키, 러시아에선 보드카를 사오지 않나? 그런데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사가는 한국술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꼭 찾는 한국술이 안동소주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하면 안동소주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 더 친숙해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구 안동역사를 리모델링해서 안동소주를 홍보하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안동소주의 롤 모델이 스카치 위스키인가?
“스카치 위스키는 연간 매출이 10조원에 달할 정도여서, 사실 안동소주와 비교 자체가 안된다. 굳이 비교하자면, 위스키는 대학원생, 안동소주는 어린이집 원생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안동소주의 역사(시작)는 스카치 위스키보다 앞서지만, 산업화 측면에선 우리가 한참 뒤진다. 문중 제사 때 쓸 술, 또 손님 접대용 술로 주로 썼기 때문에 술을 산업화하겠다는 생각은 최근에 나온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스카치 위스키에 배울 점이 많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전통주 문화대축전은 전국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술 관련 행사임에도, 양조장 대표들의 의견이 행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전국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던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행사를 처음부터 민간에 맡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민간에서는, 자치단체는 예산만 지원하고 진행은 자기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달라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할 경우 자칫하면 ‘눈 먼 돈 잔치’ 행사가 될 수도 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행사에 참여하는 민간 단체 역시, 행사가 잘못될 경우, 일부 손해를 직접 부담하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행사가 잘되면 좋고, 성공 못하더라도, 내가 손해보는 것은 전혀 없다’면 누가 진정성을 갖고 행사에 열과 성을 다해 참여하겠는가?
작년 전통주 문화대축전 행사는 아직 연륜이 쌓이지 않은 행사라, ‘동네 행사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하나 시정해나가면서 완성도를 높여나갈 작정이고, 그러면서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확대해나갈 것이다. 조만간 이 행사는 안동소주협회가 주관을 하는게 맞다고 본다. 다만, 협회 회원사들이 예산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자부담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행사 성공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민간이 주도하고, 관은 예산 지원은 하되, 보조자 역할에 충실한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내가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아이를 대학까지 시켜주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고, 그 다음부터는 자식들이 자립해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부모만 쳐다보고 지원을 계속 바라는 자식들이 많다. 관(자치단체)과 민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술박람회 같은 성격의 행사는 초기에는 관이 주도하지만, 점차 민간 주도로 바뀌어야 한다.”
-안동지역 일부 양조장은 양조시설이 낡았으나, 대표들이 시설투자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30~40년 된 증류설비를 그대로 쓰고 있는 양조장이 있는 걸로 안다. 그렇다고 조상들이 써온 소줏고리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나름 현대식 양조장비를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그조차도 많이 낡았다는 것이다. 관에서 ‘시설을 개선하라 마라’ 참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양조장들이 스스로 설비를 업데이트하고 확장할 경우, 정부는 심사를 거쳐 도비를 포함해, 예산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수억원의 예산 지원을 받아 최신식설비를 이미 갖춘 양조장도 있고, 올해 정부 지원을 받아 제2 양조장을 짓는 업체도 있다. 다만, 이럴 경우에도, 30% 정도는 꼭 자부담을 시키고 있다. 도비는 50%, 시비 20% 정도다.”
-여러 안동소주 브랜드 중 100% 쌀로 증류주를 만들지 않고,주정(값싼 외국산 원료를 연속증류해 얻은 알코올 도수 95도 이상의 증류원액)을 섞어 안동소주를 만드는 곳이 있다. 또 인공 감미료를 넣는 양조장도 있다. 전반적인 안동소주의 품질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점이 고민이다. 술 제조는 양조장의 고유권한이라, 안동시가 간섭할 수가 없다. 다만, 술은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고, 맛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작년 말에 미국 LA에 출장을 갔는데, 주정을 섞은 희석식소주가 의외로 잘 팔리고 있는 걸 봤다. 안동소주는 대부분 100% 국산쌀로 만들지만, 아무리 고급 술을 만들어도, 외국인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시장이 답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좋은 술로 평가받으려면, 좋은 재료 외에, 철저한 시장조사와 그에따른 대응 방안이 선결과제다. 다만, 안동소주는 특정 양조장에서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의 품질규정을 둬야 하지 않나 여긴다. 관련해, 경북도가 주관해 지리적 표시제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경북도가 도입을 추진 중인 지리적 표시제와 관련해선, 안동소주협회 박성호 회장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지리적 표시제는 장기적으로 브랜드 보호의 목적도 있지만, 더 중요하게는 안동소주란 브랜드를 가치있게 만드는 일이다. 지리적 표시제는 단순하지 않다. 특히 품질규정이나 제조방법, 사용원료나 브랜드 사용방법들까지 규정을 해야 한다. 결국 품질 면에서 최소한의 규정을 꼭 지켜야 하고, 이것이 소비자 신뢰와 브랜드 가치 강화로 이어진다. 결국 마케팅의 기본을 시작하는 일인 셈이다. 많은 제조자가 안동소주란 브랜드를 쓰고 싶어하고, 많은 소비자가 안동소주 브랜드 술을 찾게 되는 시작점에는 엄격한 지리적 표시제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
다만, 지리적 표시제와 관련해선, 양조장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어 지방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 붙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권기창 안동시장은 낙관적이다.
“어느 조직이든지 갈등이 없는 조직은 없다. 조직이 작을수록 더 갈등이 심할 수도 있다. 안동소주협회 회원사들만 보더라도, 누구 할 것없이 모두가 양조 전문가다. 프라이드 역시 강하다. 하지만, 회원사들이 함께 가지 않으면 협회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안동소주협회가 결성된 것은 좋은 출발이다. 출범 전부터 이런저런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협회가 출범도 못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없지 않을 갈등은 ‘안동소주의 세계화’라는 공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면 회원사 모두가 ‘이제 (안동소주의 발전을 위해)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의욕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안동시는 회원사들이 스스로 자체 규약을 만들어, 품질기준을 준수한다면, 규약을 준수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선별적 지원도 검토해, 안동소주협회에 힘을 실어줄 계획이다.”
-요즘 전통주 트렌드는 다양성에 있다. 전통적 제조법에 머물지 않고, 위스키 제조방식 일부를 도입하는 등 양조장마다 차별화된 레시피가 특징이다. 반면에, 안동소주는 다소 정체된 느낌이다.
“100% 공감한다. 전통이란 것도 머물러 있는게 아니다. 끊임없이 발전한다. 내가 지금 술을 하나 만들었다면, 1000년 뒤에는 오늘 만든 술이 전통주가 된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게 있다. 옛날 걸, 그대로 가져가야만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전통 역시 원형의 기술은 보전하되,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끔 재해석돼야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의미가 있고, 또 오래 간다. 가령, 하회탈을 보자. 평민이 양반을 조롱하는 하회탈춤을 지금 20대가 보면, 무슨 감흥이 있겠는가? 하지만 하회탈을 매개로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춤판이 떠들썩하게 벌어지면 20대들도 어깨춤이 절로 나지 않겠는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끔 하회탈춤도 콘텐츠가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안동소주도 마찬가지다. 안동소주 역시 그 브랜드와 가치는 그대로 갖되, 시대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개성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입맛에 얼마든지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원한다면, 제조방법이나 원료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시장과 타협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시장을 존중하라는 얘기다. 지금 안동소주는 ‘법고창신(옛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안해낸다는 의미로, 옛것의 소중함과 아울러 새것의 필요성을 동시에 표현한 말)’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