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케이(K)뷰티 브랜드 닥터지(Dr.G)가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 그룹에 인수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로레알 그룹의 K뷰티 브랜드 인수는 지난 2018년 스타일난다의 코스메틱 브랜드 ‘3CE’ 이후 6년 만이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이 운영하는 닥터지는 2003년 피부과 전문의 안건영 박사가 설립한 더마(피부과학) 코스메틱 브랜드다. 최근 숏폼 마케팅을 기반으로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신생 인디 브랜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업력이 긴 전통의 강자라는 평가다. 로레알은 고운세상코스메틱의 인수 금액을 밝히지 않았으나 시장에서는 5000억~6000억원 규모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로레알이 인수 대상 기업으로 고운세상코스메틱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작년 한 해 고운세상코스메틱뿐 아니라 독도토너로 유명한 라운드랩, 티르티르, 라카코스메틱 등 수많은 K뷰티 매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뷰티 브랜드와는 달리 닥터지는 국내 인지도와 매출 비중이 더 높은 편이다.
최근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뷰티 신생 브랜드들은 틱톡 등 숏폼 마케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닥터지는 이와 달리 한국 군납을 기반으로 컸다는 독특한 성장사가 있다. 군인들이 PX에서 구매해서 여자 친구, 가족 선물로 활용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고 올리브영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매출 1000억원대로 컸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의 2023년 매출은 연결 기준 1984억원이다.
로레알이 닥터지를 선택한 것도 탄탄한 업력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닥터지는 국내 더마코스메틱 1세대 브랜드로, 10대부터 90대까지 전 세대가 사용하는 대중적 화장품이라는 인식이다. 민감성 피부에 적합한 수분·진정 솔루션 ‘레드 블레미쉬’ 라인부터 누적 판매량 3000만개 이상인 ‘블랙 스네일 크림’ 등 히트 제품이 많다. 이 제품들은 모두 어린 시절 얼굴에 입은 화상 흉터로 인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피부과 전문의가 된 창업주 안건영 박사가 직접 개발했다.
반면 다른 신생 인디 브랜드들은 틱톡 등에서 숏폼 마케팅으로 성공했지만, 이들은 ‘원히트 원더(한 제품만 흥행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즉 로레알 측이 닥터지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닥터지가 더마코스메틱을 표방하는 점도 로레알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지점이다. 로레알은 라로슈포제, 비쉬, 스킨수티컬즈 등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시아 시장에 특화된 브랜드가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 화장품이 가성비와 품질로 미국, 일본, 동남아 시장에서 특히 스킨케어의 강자로 자리 잡은 상태다. 로레알 측은 “증가하는 ‘K뷰티’ 수요에 대응하고 합리적 가격대의 스킨케어 수요를 충족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이미 북미 등 해외 시장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는 브랜드가 아니라 해외 진출 시작 단계인 닥터지를 인수한 것에 대한 일부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요즘 브랜드 사활을 가르는 것은 ‘숏폼 마케팅’이라서, 이 방식을 써본 적 없는 브랜드가 북미 등의 K뷰티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K뷰티 인수합병(M&A)을 전문으로 하는 MMP의 한만휘 이사는 “로레알의 닥터지 인수는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케이뷰티 스킨케어를 로레알의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전 세계에 유통하기 위함”이라면서 “미국, 일본 시장 위주로 성장하고 있는 K뷰티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