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K)뷰티와 패션이 전 세계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화장품은 미국과 일본에서 기존 강국인 프랑스 화장품을 제치고 수출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패션 분야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해외에서 인정을 받은 뷰티·패션 브랜드들의 성공 스토리와 차별화된 제품 철학을 릴레이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케이(K)뷰티 붐은 유통 대행 회사인 ‘벤더(vendor)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유통 네트워크 기반이 없는 인디 브랜드들이 이들 덕에 아마존이나 라쿠텐 등 해외 주요 채널에 입점할 수 있어서다.
벤더는 영어로는 상인(노점상) 정도로 번역되는데, 유통업계에선 제조사와 판매자를 연결해 주는 회사란 뜻으로 쓰인다. 자신의 브랜드 없이 유통만 하다 보니 벤더사는 그간 큰 존재감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해외 진출에 발군의 성과를 내면서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김명규 에스엘라이프(SLLIFE) 대표는 벤더사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에스엘라이프는 화장품, 건강식품 브랜드를 코스트코, 이마트, 면세점, 카카오선물하기, 쿠팡 등 온오프라인 유통회사에 입점시켜 주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벤더사다.
에스엘라이프는 2003년 김 대표 모친이 설립했다. 당초 해외 뷰티 브랜드를 들여와 국내에 판매하는 것이 주력 사업이었다. 2014년 이 브랜드 총판권을 LG생활건강에 매각하면서 화장품 사업을 접었었다. 김 대표가 2017년 회사를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인 화장품 벤더사로 거듭났다. 현재 유통하는 국내외 브랜드는 120여 개다. 사실상 ‘제2의 창업’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가 벤더 사업에 집중한 것은 K뷰티 산업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포착해서다. CJ올리브영이라는 채널을 기반으로 우후죽순 등장한 중소 신진 브랜드들이 합리적인 가격대에 좋은 품질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면서 유통과 판매를 대신해 주는 벤더사들 역할도 점차 커졌다. 한류 영향으로 해외에서도 한국 화장품을 주목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의 선택은 적중했다. 에스엘라이프는 2020년 연매출 80억원을 넘겼고, 2021년 110억원, 2022년 263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엔 300억원을 넘겼고, 지난해엔 46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일본에 진출해 내수뿐 아니라 글로벌 벤더사로 거듭났다.
최근엔 회사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아 조선미녀로 유명한 K뷰티 회사 구다이글로벌과 솔리드원파트너스로부터 50억원을 투자받았다.
에스엘라이프는 이 자금으로 일본 시장에서 애경 케라시스와 동아제약 파티온 등을 유통하고 있는 일본 전문 벤더사 페이지워너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일본 메이저 유통채널에서 5000개 이상의 오프라인 유통채널을 확보했다.
김 대표는 “약 4년 전부터 일본 오프라인 채널에 가서 보면 30% 이상이 한국 제품이었다. 이를 보고 국내 브랜드를 해외로 데리고 나가는 아웃바운드 사업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벤더사 역할은 ‘생태계 조성자’다. 한국 화장품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벤더사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하고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과 소비자뿐 아니라 브랜드와 유통채널 사이에서 양측의 입장을 듣고 조율한다”면서 “벤더사는 단순히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에게 도움이 되는 동반자로서 함께 성장하는 관계”라고 덧붙였다.
그는 에스엘라이프의 2028년 코스닥 상장을 목표하고 있다. 일본 진출에 이어 동남아와 미국, 유럽 등에도 법인을 설립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현재 한국에서는 규모로 4위급 벤더로 충분히 자리를 잡았는데, 앞으로는 국내와 해외의 가교 역할을 하는 플레이어가 되고자 처음으로 외부 투자를 받았다. 현재 시장엔 내수나 해외 전문 벤더가 있지만 이 양쪽을 다 잘하는 회사가 없다”면서 “향후 상장과 함께 향후 5년 내 일본에서 탑5 안에 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