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고정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면서 유통업계와 소비자 사이에 반발이 확산됐다. 민주당은 “당론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형마트 노조와 소상공인 단체는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논란의 출발점은 더불어민주당 비례 초선 오세희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의 의무휴업일을 반드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는 휴업일을 전국적으로 획일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 회부되자, 민주당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제기됐다. 산자위 여당 간사인 김원이 의원은 전날 본지 ‘2025 유통산업포럼’ 행사에서 “개별 의원 발의일 뿐, 당론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마트는 단지 이익을 내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생활 인프라”라며 “맞벌이 가정, 1인 가구, 직장인에게 공휴일은 필수 소비시간”이라고 밝혔다. 이어 “휴업이 공익에 부합한다면 불편도 정당화될 수 있지만, 지금은 효과가 불분명하다”며 정책 재검토를 촉구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형마트 휴업일 전통시장 매출 유입 효과는 1% 수준에 그쳤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도 “오프라인 유통이 구조적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는 낡은 해법”이라며 “정책은 시민 삶을 담보로 정치적 제스처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서울 서초구와 중구, 대구, 청주 등 일부 지자체는 마트 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했고, 소비자 만족도도 높게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평일 휴무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81%에 달했다.
특히 맞벌이 부부를 중심으로 “공휴일은 장보기, 병원, 육아 외출까지 몰리는 유일한 시간인데 그마저 제한하려는 건 불합리하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시장 상인 표 얻으려다 국민을 불편하게 만든다”, “전통시장은 주차도 힘든데 아이 데리고 어떻게 가라는 거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야당 시절 소상공인 보호를 이유로 유통 규제 확대를 주장했지만, 집권 이후에는 보다 현실적인 조정 기조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반면, 마트산업노동조합과 소상공인연합회는 법안 통과를 지지하고 있다. 마트노조는 “공휴일 휴무는 유통재벌 견제와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강조했고, 소상공인연합회도 “전통시장 생존을 위한 안전판”이라고 평가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유통업체, 시장 상인, 소비자 간 합의를 통해 평일로도 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가 지역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해왔지만, 이번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전국적으로 공휴일 의무휴업이 강제된다.
전문가들은 유통 생태계 자체가 급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 장보기와 새벽배송이 일상화되면서 대형마트는 과거처럼 오프라인 유통의 중심축이 아니라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헤게모니가 이커머스로 넘어간 상태에서 더이상 효용성이 없는 규제”라면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 다음 결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법안은 국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산자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인 점을 고려하면 당장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집에도 관련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다. 다만 정쟁화나 여론 변화에 따라 입법 환경이 급변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