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중구의 한 CU 편의점. 인부들이 매장에 새 집기를 설치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부에는 이미 성인 남성 키보다도 큰 제품 진열대가 간격을 맞춰 세워져 있었고, 복도 곳곳마다 직원이 붙어 가장자리부터 제품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바깥에는 각종 제품을 담았던 보라색 플라스틱 상자와 종이 박스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인도와 맞닿는 외부에는 통유리창이 새로 설치돼 밖에서 내부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재단장 이후 이 점포는 기존보다 입점 품목 수가 약 14% 늘었다.
시장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편의점 업계가 점포 재단장에 한창이다. 신규 출점 목표는 낮추면서, 기존 매장의 효율을 높여 매출과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복안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업체들은 점포 재단장 과정에서 각종 집기류, 진열대, 카운터, 휴게공간 등을 최신 설비로 바꾸면서 필요한 경우 내부 리모델링, 외벽 도색 및 간판 교체도 진행한다. 또 상품군별 매출 동향, 유사 입지 점포 상황 등 각종 데이터를 고려해 입점 상품을 조율하기도 한다. 비용은 대부분 본사가 충당하기 때문에, 가맹점주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다.
CU는 올해 점포 재단장 관련 투자 예산과 지원 대상 점포를 지난해 대비 50% 이상 늘렸다. 작년까지는 시설 노후, 운영 미숙, 상권 변화 등으로 집중 관리가 필요한 가맹점만 재단장 대상에 포함했지만, 올해부터는 운영 우수 점포, 점주가 바뀌는 전환 점포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했다.
CU의 재단장 점포는 지난 2016년 200여점에서 2023년 700여점, 2024년 800여점 등으로 매년 확대되는 추세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600여점이 재단장됐고, 연말까지 약 1200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CU 관계자는 “지난해 재단장에 참여한 800여개 점포 매출은 전년 대비 20.1% 상승하는 등 효과가 컸다”며 “올해 프로젝트를 확대함에 따라, 매출 증대에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GS25 역시 올해 ‘이익 중심의 내실 성장’을 주요 전략 키워드로 설정하고, 외형 성장보다 개별점 수익성 강화 전략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신규 출점은 검증된 기존 소매점의 전환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스크랩 앤 빌드(Scrap and Build)’ 형태의 재단장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스크랩 앤 빌드는 기존 매장 옆 상가를 추가로 임차해 편의점 공간을 확대하거나, 더 좋은 입지의 인근 상가로 이동 출점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함께 GS25는 상권을 고려해 매장에 새로운 콘셉트를 부여하는 형태의 재단장도 함께 진행 중이다. 기존에는 주류 특화 매장, 신선식품 특화 매장 등을 위주로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스포츠 특화 콘셉트를 적용한 매장도 지역별로 확대하고 있다. GS25는 현재 FC서울 특화 매장, LG트윈스 특화 매장, 한화이글스 특화 매장, 울산HD 특화 매장 등 5개 스포츠 특화 매장을 운영 중인데, 숫자를 더 늘릴 계획이다.
세븐일레븐도 지난해 10월 새로운 콘셉트의 가맹 모델 ‘뉴웨이브(New Wave)’를 출시했다. 상권 분석을 통해 식품뿐만 아니라 패션·뷰티 등 고객 맞춤형 상품을 배치하고, 현대적 공간 디자인을 적용한 게 특징이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에 만들어진 첫 뉴웨이브 매장은 일반 점포 대비 약 4배 수준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식품, 주류 등 먹거리 매출은 일반 점포 대비 최대 12배 늘었고, 신선과 뷰티도 각각 16배, 9배 높게 나타났다. 세븐일레븐은 올해 3월 대전시 둔산동에 첫 뉴웨이브 가맹점을 냈고, 향후 점차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업체들이 재단장 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은 국내 편의점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탓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편의점 주요 4사(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의 점포 수는 5만4852개로 전년보다 28개 줄었다. 점포 수 감소는 1988년 편의점 산업이 도입된 이후 36년 만에 처음이다. 국내 편의점의 인구 대비 밀도는 ‘편의점 강국’으로 불리는 일본보다도 2배 이상 높다.
GS25는 올해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편의점 점포 수 순증 목표를 기존 500~600개에서 절반으로 낮춘 250~300개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CU도 올해 신규출점 목표를 과거 5개년 평균(약 900개)의 76% 수준인 700개로 조정했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2022년 미니스톱 인수 이후 꾸준히 점포 수를 줄이고 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기존 점포를 재단장하면 공간을 효율화하고 새로운 집기류를 투입해 입점 품목 수를 늘릴 수 있다”며 “이에 따라 고객의 체류 시간도 늘어나고, 구매 확률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을 비롯해 여러 유통 채널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점포 재단장은 고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편의점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매출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