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북미 화장품 수입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한 한국 화장품 업체들이 현지 생산 시설 구축과 유통 채널 강화에 나서고 있다. 북미 시장 내 입지를 더 확대하고,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 타격도 상쇄하겠다는 복안이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051900)은 최근 미국 자회사 LG H&H USA에 대한 1억3000만달러(약 1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LG생활건강은 7000만달러(약 970억원)를 운영 자금 및 재무 구조 개선에 쓰고, 6000만달러(약 830억원)는 현지 자회사 더에이본컴퍼니(The Avon Company)에 현금 출자해 운영 자금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LG생활건강의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 CNP에서 출시한 립밤 제품 ‘립세린'. /LG생활건강 제공

이번 유상증자는 현지 유통채널 강화를 위한 목적이 크다. LG H&H USA는 현지 대형 뷰티 멀티숍에 주요 브랜드를 출시해 판매하며, 더에이본컴퍼니는 방문판매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더에이본컴퍼니의 경우 LG생활건강이 지난 2019년 1450억원을 들여 인수했지만 2021년 55억원, 2022년 470억원, 2023년 404억원, 2024년 280억원 등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매각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번 추가 투자를 통해 북미 사업에 다시 힘을 싣는 모습이다.

한국콜마(161890)는 올해 2분기부터 미국 2공장 시험 가동에 돌입한다. 초기 파일럿(시험) 테스트를 거쳐 3분기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할 전망이다. 이 공장은 2023년 1월부터 설립이 추진됐으며, 현지 수요가 높은 기초 화장품과 자외선차단제 생산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해 한국콜마 미국 법인은 전년 대비 각각 55%, 37% 상승한 매출 579억원, 영업이익 6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콜마는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공장 1개를 운영 중인데, 증권가는 제2공장이 미국 법인에 연간 6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추가로 안길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콜마는 2공장 가동을 계기로 미국의 상호관세 영향도 일부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박은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국콜마 2공장은 북미 내에서 가장 최신 설비를 갖춰 글로벌·현지 인디사 등으로부터 관심이 확대될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관세 영향으로 국내 브랜드로부터 미국 내 생산 문의도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한국콜마도 “기존 북미 현지 고객사뿐만 아니라, 한국과 캐나다, 프랑스에서 제품을 생산하던 고객사들도 북미 쪽으로 생산 이관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090430)도 미국 내 생산 시설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김승환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최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3~5년 안에 미국 내 물류 및 모듈 생산 시설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중국과 한국에서 주로 제품을 생산하며, 미국에서는 물류센터 및 연구개발(R&D) 사무소만 운영하고 있다.

한국콜마 미국 법인 콜마USA 제2공장 조감도. /한국콜마 제공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북미 지역 매출액은 5246억원으로 전년 대비 83% 증가했다. 주력 브랜드인 라네즈와 이니스프리, 그리고 지난 2023년 인수한 코스알엑스가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덕이다. 김 대표는 “현재 시장의 성장 속도로 보면 북미, 유럽, 일본 순으로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북미 시장은 아모레퍼시픽의 핵심 지역”이라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화장품 수입 시장 내 한국 제품 비율은 전년보다 5.9%포인트(p) 상승한 22.4%를 기록해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 화장품 대미 수출 규모가 전년 대비 54.3% 증가한 17억100만달러(약 2조3500억원)를 기록한 덕이다.

반면 프랑스는 지난해 대미 수출액이 12억6300만달러(약 1조7500억원)로 전년 대비 9.6% 증가하는 데 그치며 한국에 1위를 내줬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브랜드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아마존 등 온라인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이 중요한 성공 전략이 됐다”고 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수입품 가격 상승이 우려되자 선크림 등 한국산 화장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케이(K)-뷰티는 우수한 품질, 빠르고 트렌디한 신제품,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등을 앞세워 성장하고 있다”며 “글로벌 화장품 시장의 성장률이 주춤하더라도, K-뷰티만은 독자적인 카테고리로서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