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이차로 홍화차(紅花茶)를 준비했어요. 신세계의 상징인 붉은 꽃을 연상시키는 색과 화려한 꽃향, 한국 발효차 특유의 구수함이 어우러진 차지요. 함께 낸 박하잣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하고 본차(本茶)를 드시면 됩니다.”
봄비가 내리던 지난 4월 9일, 귤향 차와 함께 잣경단, 쑥갠떡, 건시단자, 매작과, 오미자 배정과가 놓인 정갈한 다과상이 차려졌다. 이곳은 서울 소공동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새롭게 선보인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디저트 살롱(이하 디저트 살롱)’이다. 신세계백화점이 지난달 9일 옛 제일은행 본점을 재단장해 개관한 헤리티지관 5층에 들어섰다. 평일 오후였지만, 차와 병과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디저트 살롱은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갖췄지만, 먹을거리는 한국 전통 방식을 계승했다. 떡과 한과는 전래 음식 연구가 서명환과 협업해 개발했고, 차는 18대 매월당 로해 김동현과 함께 18세기 조선 이운해가 집필한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에 기초해 만들었다. 찻집이지만, 커피를 찾는 고객을 위해 흑보리를 로스팅해 만든 맥가배차(麥珈琲茶)도 선보인다.
디저트 살롱은 신세계백화점의 한식연구소가 직접 메뉴를 개발하고 운영한다. 2021년 설립된 한식연구소는 한식 식자재를 판매하는 ‘발효:곳간’과 한식 레스토랑 ‘자주한상’에 이어 이번에 디저트 살롱을 선보였다.
신세계가 연구소까지 세워 한식을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비즈는 지난달 9일 한식연구소를 이끄는 한희정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한식 중에서도 디저트가 가장 어려웠다”는 그는 “고객의 일상에서 자주, 가까이 한식을 접하게 해 미래 세대 유산으로 계승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한 팀장과의 일문일답.
―신세계 한식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가.
“우리나라 고유의 자연과 계절, 그리고 선조들의 식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한식의 본질을 다시 살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현재 백화점 식품관에서 3가지 한식 특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발효:곳간’은 좋은 식재료와 장인 정신이 담긴 발효식품을 소개하는 프리미엄 한식 그로서리(식자재) 브랜드고, ‘자주한상’은 정갈한 반상과 안주를 즐길 수 있는 모던 한식 다이닝이다. 최근에는 한국 전통 다과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디저트 살롱’을 선보였다.
각 브랜드가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철학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건강하게 한식을 즐길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전통 방식의 깊이 있는 맛과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롭게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세계가 한식을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식문화 발전에 있어 신세계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국내 백화점에 프리미엄 식품관을 선보인 것도, 해외 선진 델리와 디저트 전문관인 스위트파크를 도입한 것도 신세계가 처음이다.
선진 식료품과 식문화를 들여오면서 한식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내부적으로 형성됐다. 그것이 신세계가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 디자인’과도 맞닿아 있다고 봤다. 앞서 ‘장방’ ‘떡방’ ‘술방’ 등을 통해 전국의 명인들이 만든 장과 전통주, 떡 등을 판매하는 매장을 전개한 적이 있으나, 좀 더 가치 있고 차별화된 것을 보여주고자 직접 한식연구소를 마련하게 됐다."
―신세계가 한식을 다루는 방법은?
“정통성을 지키는 것. 한식의 본질을 지키면서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방향성이다. 지금 보시는 떡들도 모양이나 담음새를 현대적으로 변화시킨 거지, 떡 자체에 변형을 준 게 아니다. 다만, 현대적인 입맛을 찾는 고객을 위해 커피를 대체할 맥가배차를 선보인다던지, 간장 조청 카라멜이나 흑당 과자를 만들어 보는 식으로 변주를 주고 있다.
메뉴 개발의 경우 명성 있는 전통 음식 연구가들과 협업하면서 내부 셰프들의 감각을 키워가고 있다. 음식만이 아니라 국내 작가의 기물, 패키지 하나까지 한국적인 미감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디저트 살롱’을 새롭게 선보였다.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발효:곳간’이 다채로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식재료를 보여주는 공간, ‘자주한상’이 정갈한 식사를 제안하는 공간이라면, ‘디저트 살롱’은 그 마무리를 장식하는 다과 상차림이라고 볼 수 있다. 메뉴 선정에서는 전통과 현대의 균형, 계절성과 건강함, 편리함 등 세 가지 요소를 중심에 뒀다. 고객들이 익숙하지만,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가장 신경 썼다.
디저트 살롱의 경우, 연구소 셰프들이 서명환 선생에게 2년 넘게 떡과 한과 만드는 걸 배우고 레시피를 개발했다. 또 로해서울 김동현 디렉터가 한국 차 개발에 함께 해줬다. 선조들이 마신 한국 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뒀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한식 중에서도 디저트는 정말 손이 많이 간다. 식사는 재료를 준비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 나가면 되는데, 디저트는 미리 준비할 게 많다. 잣경단의 경우 고물을 만드는 데만 3일이 걸린다. 잣을 손질하고 갈아서 기름을 빼야 이렇게 고실고실한 고물이 나온다. 떡은 늘 가까이 있고 친근하다 보니 서양 디저트보다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정말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한식인 거 같다. 늘 가까이 있으니 쉽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만, 공정이 까다롭고 전문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솜씨 있는 한식 셰프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한식을 하는 전문가를 키워주는 양성기관 같은 게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식연구소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음식은 ‘재료’가 시작이다.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 친화적인 재료를 찾아 맛있고 건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유통하는 만큼 안전성도 중요하다. 아무래도 한국 음식이 발효 음식이 많다 보니, 식품 위생 기준에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명인의 음식도 마찬가지다. 신세계 상품과학연구소의 기준에 맞는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소비자 취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식연구소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발효:곳간’에서 판매하는 소포장이나 진공 포장 쌀 같은 제품은 1~2인 가구나 간편식을 선호하시는 분들을 위해 개발했다. 최근에는 부담 없이 선물할 수 있는 소형 세트류도 확대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한식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저트 살롱의 경우 차는 전통 방식을 살렸지만, 다과는 재료로 변주를 줬다. 매작과 반죽에 버터를 넣어 흑당 시럽을 입힌 흑당 과자를 만들고, 감태나 현미, 아몬드, 블루베리를 넣은 쌀강정을 만드는 식이다. 간장 아이스크림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모든 근간은 전통 한과 제작 기법을 기반으로 한다.
5월부터는 매달 새로운 테마를 가진 계절 다과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식 디저트에 대한 저변 확대를 위해 차회(Tea Experience)도 앞두고 있다."
―향후 계획과 목표는.
“디저트 살롱은 아직 준비한 60%도 못 보여줬다.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확장하기보다는 브랜드의 완성도와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신세계 한식연구소는 한국의 식문화와 미감을 제대로 담아낸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한식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키워가고 싶은 꿈이 있다.
직원들에게 늘 ‘고객의 일상에서 자주 가까이 한식을 접하게 하다가 그걸 널리 알리고 미래 세대의 유산으로 계승하자’라는 말을 한다. 개인적인 소망은 우리가 선보인 브랜드들이 일본의 카야노야(茅乃舎, 1893년 창업한 일본 천연재료 식료품 전문점)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 매장을 방문한 해외 고객들이 선물로 사 갈 만큼 사랑받는 게 개발자로서 최고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