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향수 브랜드들이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기초 화장품에 집중됐던 케이(K)뷰티 영역이 ‘향’까지 확장되면서 국내 향수 브랜드들은 세계 각국 대도시에 플래그십 매장을 잇달아 내고 있다. 국내 향수 브랜드에 대한 글로벌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탬버린즈 상하이 매장./탬버린즈 제공

28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향수 수출액은 3억8640만달러(약 5583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39.9% 증가한 수치다. 전체 화장품 수출액 중 향수 비중은 아직 3.8%에 불과하지만, 증가율은 가장 높았다. 향수 다음으로 높은 증가율을 보인 품목은 클렌징 제품(36.3%)과 향초·방향제(33.9%) 순이었다.

니치 향수에 대한 국내외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니치 향수는 대량 생산되는 상업용 향수와 달리 한정된 수량과 독특한 조향을 특징으로 한다. 개인의 취향과 감성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들이 늘면서, 희소성과 차별성을 지닌 니치 향수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향수 브랜드의 경우 향수뿐 아니라 향초, 방향제, 핸드·바디워시 등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며 ‘향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는데, 국내 향수 브랜드도 비슷하다. 기존에는 기초 화장품 제품군이 K뷰티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향수 브랜드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셈이다.

국내 향수 브랜드들은 브랜드 경험을 강화하기 위해 플래그십 스토어 전략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차혜영 대표가 2019년 설립한 논픽션(Nonfiction)은 지난 3월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에 시그니처 스토어를 열었다. 1층에서는 향수와 바디·홈 리추얼 제품을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으며, 2층은 논픽션 특유의 감성을 담은 디저트 카페로 꾸며졌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전통적으로 약한 향을 선호해 향수 시장 규모가 작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며 “한국 향수 브랜드들은 일본에서 보기 드문 트렌디한 디자인과 감각적인 공간 연출로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탬버린즈(Tamburins)는 작년 3월 도쿄 아오야마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데 이어 4월 오사카 한큐 우메다 본점에 입점했다. 작년 10월에는 상하이에 대규모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어 주목을 끌고 있다. 분홍색 콘크리트 벽과 대형 장미 조형물 등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는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포토존 명소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탬버린즈는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가 론칭한 향수 브랜드다. 블랙핑크 제니를 글로벌 모델로 내세워 해외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국내 향수 브랜드에 대한 해외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셀바티코 운영사인 본작은 작년 7월 프랑스 조향기업 로베르테(Robertet)의 투자 자회사 빌라블루(Villa Blu)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로베르테는 농업부터 향료 추출, 조향까지 모든 공정을 관리하는 조향 기업이다. 샤넬 등 글로벌 브랜드에 원료를 공급하고 있으며 전 세계 프리미엄 향수 브랜드의 90%를 조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빌라블루가 비유럽권 브랜드에 투자한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셀바티코는 빌라블루와 로베르테로부터 ▲유통 ▲지식재산(IP) 운영 서비스 ▲기술 및 제품 개발 ▲글로벌 뷰티 기업 및 벤처 캐피탈(VC) 네트워킹 ▲유럽 후속 투자 유치 등을 지원받는다. 셀바티코는 이를 발판 삼아 프랑스에 법인을 설립하고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겠다는 목표다. 본작은 지난 1월 국내에서도 유진자산운용과 아주IB투자, 퓨처플레이 등으로부터 25억원 규모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본투스탠드아웃(Borntostandout)’도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2년 서울에서 설립된 이후 2년 만에 전 세계 60개국 이상의 럭셔리 유통망에 입점하며 빠르게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하우스바이림이 운영하는 이 브랜드는 지난 2월 미국 벤처캐피탈인 터치캐피탈과 로레알그룹 산하 벤처펀드 볼드(BOLD)로부터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국내 향수 시장 규모 역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향수 시장은 2019년 5317억원 규모였으나, 올해는 약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특유의 세련된 감성, 차별화된 브랜드 스토리, 그리고 감각적인 공간 마케팅이 결합해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며 “개성과 취향을 중시하는 트렌드와 맞물려 한국 향수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입지를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