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영등포구의 한 CU 편의점. 매장 깊숙한 곳에 있던 한 키오스크 옆에는 접수를 마치고 집하를 기다리는 택배 상자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배송을 시키려 키오스크를 직접 조작해 봤다. 원하는 배송 형태, 수취인 정보, 내용물 등 선택지를 고르고 가져온 상자의 무게를 재자, 손쉽게 운송장을 출력할 수 있었다.
접수된 택배는 집하를 거쳐 자정쯤 물류가 집중되는 서울1캠프 HUB(거점)에 입고됐다. 다음 날 오전에는 목적지 인근의 TC(통과형 물류센터·Transfer Center)로 이동했다. 이윽고 저녁 6시 40분쯤 목적지로 지정한 중구 신당동 인근의 한 주택의 현관문 앞까지 파손 없이 배송됐다.
편의점 업계가 택배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적극 확대하고 있다. 국내 점포 수는 이미 포화 상태지만, 전국 골목에 퍼진 매장 인프라로 배송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택배는 기존 택배보다 저렴한 가격에 더해 최근에는 배송 속도까지 개선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 GS25가 연 ‘자체 물류망 택배’… CU·세븐일레븐도 가세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중 가장 먼저 자체 물류망을 활용한 택배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GS25다. 회사가 지난 2019년 시작한 ‘반값택배’는 고객이 근처 GS25 매장에서 택배 발송을 접수하고, 수령인이 자택 인근 GS25에서 찾아가는 방식이다. 요금은 일반 택배의 절반 수준이다.
출시 첫 해 9만건에 불과했던 반값택배 이용 건수는 최근 누적 4300만건을 돌파했다. 전년 대비 이용 건수도 2022년 75.7%, 2023년 15.3%, 2024년 12.1%씩 늘었다.
CU도 2020년 ‘알뜰택배’를 출시하며 택배 시장에 진출했다. CU 알뜰택배 역시 전년 대비 이용 건수가 2022년 89.7%, 2023년 90.3%, 2024년 30.5% 등으로 증가했다.
CU는 지난해 10월 택배 기사가 직접 발송지로 방문 수령해 배송지까지 전달하는 ‘방문택배’ 서비스도 시작했다. 최근에는 서울권 내에서 발송한 택배를 하루 만에 목적지로 배송해 주는 ‘CU내일보장택배’ 서비스도 시작했다. 익일 배송 서비스를 편의점 업계에서 도입한 최초 사례다.
세븐일레븐도 지난 2월 365일 휴무 없이 운영하는 ‘착한택배’ 서비스를 출시하며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간 택배를 주고받는 서비스로, 제주도를 제외한 내륙에서는 지역에 무관하게 업계 최저 수준인 1980원의 운임을 적용하고 있다.
◇ 물건만 팔기엔 아깝다… 전국 물류 거점 된 편의점
이처럼 편의점 업체들이 속속 택배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신규 수익원 창출을 위해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편의점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4.6%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영향권에 속했던 지난 2020년 이후 약 5년 만에 역성장한 것이다.
국내 편의점은 이미 포화 상태다. 편의점 4사(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의 점포는 지난해 총 5만4852개로 2023년 5만4880개에서 28개 감소했다. 전체 편의점 규모가 감소한 것은 36년 만에 처음이다.
편의점 택배는 집객 효과가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택배를 접수 혹은 수령할 때 편의점을 방문하는 손님이 단순 택배 업무 외에도 매장에서 다른 제품들을 구매하는 경우가 꽤 잦다”고 말했다.
또 편의점은 전국 골목마다 자리 잡고 있어 라스트마일(최종 목적지 도착 직전 구간·last mile) 물류 거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택배 사용자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인근 점포에서 간편히 이용할 수 있다.
중고 거래·리셀(되팔기) 문화의 확산도 편의점 택배 이용을 늘리는 원인이다. 중고 물품은 직접 만나서 거래하지 않는 이상 택배를 사용한 거래가 보편화돼 있는데, 편의점 택배는 가격과 접근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이달 초 당근마켓이 운영하는 송금·결제 서비스 ‘당근페이’는 CU∙GS25와 협업해 자사 앱 내에서 편의점 택배를 예약할 수 있는 기능을 출시했다. 이용자가 외부 앱으로 이동하거나, 키오스크 현장 예약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당근 앱 안에서 바로 택배를 예약할 수 있는 기능이 담겼다.
◇ 택배 규격·무게·품목 제한은 단점
편의점 택배는 편리하지만, 한계도 있다. 대부분 업체는 무게를 5㎏ 이하로 제한하며, 박스 규격도 세 변의 합이 80~100㎝ 이하로 정해져 있다. 분실 우려가 큰 서류나 소형 박스도 제한된다.
고가 물품 거래가 어렵다는 점도 단점이다. 대부분 업체가 가액 한도를 50만원 이하로 정하고 있으며, 일정 금액을 초과하면 할증이 붙기도 한다.
취급 품목도 제한적이다. 액체류, 유리류, 식품류 등은 접수 대상에서 제외되며, 주로 의류, 서적, 잡화, 포장식품, 곡물 등으로 제한된다.
한 편의점 업체 관계자는 “자체 물류망을 활용하는 편의점 택배는 매장 공간과 업무상의 제약 때문에 규격과 무게에 제한을 두고 있지만, 편리성 측면에서는 확실한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기성 택배업체들과 협업해 서비스 범위를 넓히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