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이 옛 SC제일은행 본점을 리뉴얼(재단장)해 지난 9일 개장한 '더 헤리티지'. 북쪽 출입구에 '샤넬' 간판이 붙어 있다. 현재 이 출입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김은영 기자

“오늘 입장은 마감됐습니다.”

지난 9일 오후 12시쯤 서울 중구 신세계(004170)백화점 본점 ‘더 헤리티지’에 들어서자, 커다란 샤넬 로고가 있는 매장이 보였다. 입구엔 이날 개장한 샤넬 부티크에 들어가려는 고객들의 대기 줄이 세워졌다. 보안요원은 새로 온 고객들에게 “오늘은 마감되었으니, 다음에 오라”고 안내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이날 옛 SC제일은행 본점을 리뉴얼(재단장)해 더 헤리티지라는 이름으로 개장하면서, 본관 1·2층에 있던 샤넬 매장을 이곳 1·2층으로 옮겼다. 매장 규모는 약 700평으로 국내 백화점 샤넬 매장 중 가장 크다. 의류와 핸드백, 신발 전용 공간과 시계·주얼리 전용 살롱을 갖췄다.

백화점 개점 시간 전인 오전 10시에 방문했다는 한 고객은 “2시간 만에 입장했는데, 다른 매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코코 핸들 블랙 제품이 많았다”라며 “재고가 많아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90년 문화유산과 명품의 만남

더 헤리티지는 신세계가 2015년 옛 제일은행 본점을 850억원에 인수한 후 10여 년의 준비 끝에 선보인 쇼핑 문화 공간이다. 1935년 제일은행 전신인 조선저축은행이 세운 건물로, 1985년 서울시 유형문화유산 제71호로 지정됐다. 일본인 건축가 히라바야시 긴코가 설계한 네오바로크 양식 건물은 철골·철근 구조를 사용한 첫 은행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세계백화점이 서울 중구 본점 인근 옛 SC제일은행 본점을 리뉴얼(재단장)해 9일 개장한 '더 헤리티지' 4층 역사관 전경. /김은영 기자

신세계 관계자는 “국가문화유산 건물인 만큼 최초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데 공을 들였다”며 “1935년과 비교해 90%가량 동일한 수준으로 복원했다”라고 설명했다.

더 헤리티지는 본관에 이은 ‘제2 명품관’ 역할을 한다. 1·2층에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을 들이고, 백화점 북쪽 샤넬 매장과 연결되는 출입구 외벽에도 샤넬 간판을 붙였다. 다만, 이날은 해당 출입구가 닫힌 채였다. 신세계 측은 이곳에 샤넬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4층에는 역사관과 미술 갤러리가 조성됐다. 역사관은 국내 첫 근대식 백화점인 신세계 본점(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이 소장한 다양한 유물과 사료를 전시했다. 1960년대 백화점 동판과 카탈로그, 자체 제작 핸드백 등을 볼 수 있다. 제일은행 시절 쓰던 금고도 전시해 건물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갤러리에서는 1930~50년대 서울 중심지였던 남대문 일대를 보여주는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5층에는 한국 문화유산을 신세계의 방식으로 풀어낸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를 꾸렸다. 개관을 기념해 보자기를 주제로 한 다양한 공예품이 전시되고 있다. 한쪽에는 신세계 한식연구소에서 개발한 한식 디저트를 선보이는 디저트 살롱이 마련됐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헤리티지' 5층에 있는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김은영 기자

지하 1층에는 공예 기프트 숍과 함께 라리크, 바카라, 뱅앤올룹슨 등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자리했다. 블랙 다이아몬드 등급(연간 1억2000만원 이상 구매 고객) 이상 고객을 위한 더 헤리티지 발렛 라운지도 만들어졌다.

3층은 아직 비어 있는 상태다. 앞서 신세계는 해당 건물의 1~3층을 글로벌 명품 및 유명 브랜드 매장으로 채운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 신세계 명동타운 본격화... 서울 랜드마크로 띄운다

신세계는 더 헤리티지와 더불어 지난달 재단장한 신관 ‘더 에스테이트’, 하반기에 여는 본관 ‘더 리저브’ 등 세 곳을 기반으로 본점 일대를 ‘신세계 타운’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박주형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관광의 즐거움과 쇼핑의 설렘, 문화의 깊이까지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세계 '더 헤리티지' 1층 천장의 꽃 모양 석고 부조. 이 공간에는 현재 샤넬 매장이 자리했다. /신세계백화점 인스타그램

업계에 따르면 더 리저브의 경우 기존 1·2층에 있던 샤넬 매장이 빠진 자리에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매장이 확장 이전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루이비통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도 첫선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각에선 특정 명품 비중이 높은 더 헤리티지에 대해 ‘주객이 전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화점에 들어가면 로비 없이 바로 샤넬 매장이 나오고, 2층까지 샤넬 고객 외에 출입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근대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1층 천장의 꽃 모양 석고부조도 샤넬 매장을 방문한 고객만 감상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날 백화점을 찾은 한 시민은 “백화점이 아니라 샤넬 플래그십스토어(대표 매장) 같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선 신세계의 본점 타운화 전략에 기대를 거는 시각이 많다. 인근 소공동에 본점을 둔 롯데백화점도 명품관과 영플라자, 롯데호텔, 면세점 등을 연계해 ‘롯데타운’을 만들고 일부 공간을 리뉴얼 중이다. 그런 만큼 ‘유통 양강’인 신세계와 롯데 간 1등 타이틀 경쟁도 볼거리로 지목된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세계가 더 헤리티지를 통해 명품 경쟁력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올해 백화점 3사 중 가장 높은 매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헤리티지' 2층 샤넬 매장 입구. /김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