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8층. 구찌(왼쪽)와 까르띠에(오른쪽) 매장이 있던 자리에 가벽이 세워져 있다. /김은영 기자

업황 부진으로 시내면세점의 구조조정이 잇따르는 가운데,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시내면세점을 속속 떠나고 있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업계에선 명품 매장이 빠지면, 안 그래도 수익성이 낮아진 시내면세점의 경쟁력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찌는 3월 말일 자로 신라면세점 서울점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매장을 폐점했다. 같은 날 까르띠에도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매장을 닫았다. 이에 따라 구찌의 시내면세점 매장은 3곳, 까르띠에는 2곳만 남게 됐다.

작년 12월엔 반클리프아펠이 신라면세점 서울점과 롯데면세점 본점을 닫으면서 시내면세점 매장을 전부 철수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입점 업체의 정책에 따라 매장 운영을 종료했다”면서 “해당 매장 자리의 사용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티파니와 루이비통 등 다른 명품 브랜드들도 시내면세점에 철수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국내 면세점 업황 부진과 맞물려, 명품 기업들이 고급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내면세점 철수를 추진한 것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코로나19 시기던 2022년 1월, 프랑스 명품 루이비통이 롯데면세점 제주 매장의 영업을 중단하면서 명품 브랜드들의 시내면세점 이탈이 시작됐다.

당시 루이비통은 시내면세점의 중국 보따리상(다이궁) 위주 매출이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시내면세점 매장을 철수하고 공항면세점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후 신라면세점 제주점과 롯데면세점 부산점의 운영을 중단했다. 같은 해 3월 샤넬도 부산과 제주 시내면세점 영업을 종료했고, 롤렉스, 끌로에, 발렌티노 등도 시내면세점을 떠났다.

명품 수요 감소로 시내면세점 매출이 부진한 것도 철수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번에 시내면세점 두 곳을 폐점한 구찌의 경우 지난해 신라면세점 서울점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매출이 전년 대비 각각 84%, 42%씩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시내면세점은 중국 단체 관광객이 화장품과 명품을 쓸어 담으면서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중국인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

국내 면세점 총매출은 2019년 24조8586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14조224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작년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 등 면세 업체 4곳은 모두 영업 적자를 냈다. 전체 매출 중 시내면세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레 시내면세점 수도 줄고 있다. 2019년 22개였던 시내면세점은 지난해 16개로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1월 신세계면세점이 부산 센텀시티점을 폐점한 데 이어, 현대백화점도 오는 8월 동대문점 문을 닫는다. 서울만 보면 2019년 13개던 시내면세점 수는 오는 8월 6개로 줄게 된다.

영업 중인 시내면세점들도 면적을 축소하는 등 긴축 경영에 나섰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수익성이 낮은 다이궁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하며 도매 매출 비중을 낮추는 중이다.

명품 브랜드들의 시내면세점 이탈이 잇따르자, 업계에선 시내면세점의 경쟁력이 더 약화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 면세점 업체 관계자는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공항과 중국 면세점에 집중하기 위해 시내면세점 철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면세점 판매가 화장품과 명품에 집중되고 있어, 명품 매장이 빠질 경우 실적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시내면세점 사업자들은 이들의 폐점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