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천 쿠팡물류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소방관 한 명이 순직하고 수 천억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업계는 로켓·새벽 배송 등 속도 경쟁이 만들어 낸 참사라고 지적한다. 조선비즈는 열악한 물류센터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4편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사원님, 건물 안에선 절대로 담배를 피우면 안 됩니다. 얼마 전 덕평센터에 화재도 났잖아요. 담배는 꼭 밖에 나가서 피세요.”
지난 6월 30일 오전 8시 반, 서울 송파구 장지동 쿠팡서울물류센터 교육실에서 신규 사원들을 교육하던 선임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홍역을 치른 탓인지 교육은 주로 코로나19 예방에 치중됐다. 보안과 장비 안전 교육이 이어졌지만, 소방 안전 교육은 따로 진행되지 않았다. “담배는 나가서 피우라”는 말이 전부였다.
경기도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난지 2주째, 물류센터는 여전히 주문받은 물동량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기자가 물류센터 알바(아르바이트)를 가겠다고 하자 주변에선 “위험하지 않나”란 염려가 먼저 나왔지만, 현장에선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화재 따윈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탓인지 안전관리에 자신이 있어서 인지, 궁금증을 안고 일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예방 교육만 철저…소방 교육은 전무
쿠팡물류센터 아르바이트 지원엔 자격요건이 없다. 일하기 전날 구인공고에 나온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이름, 생년월일, 원하는 업무 시간 등을 보내면 “내일 출근하세요”라는 답변이 온다.
출근한 신규 사원들은 30분가량 안전 교육 영상을 보고, 자가검사 키트로 코로나19 검사를 한다. 교육은 주로 코로나19 예방에 집중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붙어 서있으면 사진 찍힙니다. 그러면 다음에 일을 못할 수도 있어요”라는 선임의 충고가 이어졌다.
이날 주간1조에 배치된 사원은 170여 명. 기자는 피킹(Picking)이라 불리는 집품 업무를 맡았다. PDA(개인용 단말기)가 할당한 대로 카트(Cart·수레)를 끌고 다니며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찾아 토트(Tote·적재용기)에 담는 출고 업무다.
물건들은 종이로 된 가벽 사이로 불규칙하게 진열돼 있었다. 기저귀 옆에 세탁세제, 그 옆에 설탕과 장난감 물총이 진열되는 식이다. 어차피 PDA가 시키는 곳으로 가서 물건을 담으면 되기 때문에 상품 배치는 어떻든 상관이 없었다.
3kg들이 설탕 19개, 커피믹스 40 상자, 물총 38개…. 상자를 뜯고 각 상품의 바코드를 스캔해 토트에 담는 작업은 단순하지만, 노동집약적이었다. 대물량 주문이 많은 이유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고객 유인을 위해 묶음 판매를 성행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득템’이었겠지만, 피커(Picker·집품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한숨이 나왔다.
◇에어컨 대신 온종일 돌아가는 선풍기 ‘과부하 우려’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29도였다. 마스크를 끼고 작업하다 보니, 금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작업자들의 땀을 식혀주는 건 수십 개의 대형 선풍기뿐이었다. 기둥에 묶인 4~5구짜리 멀티탭에는 선풍기와 컴퓨터, 정수기 등의 코드가 어지럽게 꽂혀 있었다.
선풍기는 기자가 일한 8시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갔다. 주간·오후 근무조의 근무시간을 고려하면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선풍기가 돌아가는 셈이다. 덕평물류센터 화재 원인이 멀티탭에서 튄 불꽃 때문이었다는 소방당국의 발표를 떠올리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주변엔 종이상자, 포장용 비닐 등 가연성 물건 천지였기에 불이 나면 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곳곳엔 소화전과 소화기가 비치됐고, 방화셔터도 설치됐다. 하지만 일용직 근로자가 대부분인 사업장에서 화재 발생 시 제대로 된 대처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9900여 m²(약 3000평) 공간에 여러 상품들이 높이 쌓인 탓에 처음 온 사람들은 건물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기자도 화장실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하지만 현장에서 소화기 사용법이나 비상구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어떤 소화기는 카트 등에 밀려 원래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작업자 스스로 위기 상황을 대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할 지도 의문이었다. 기자가 일한 2층은 중간에 복층이 껴 있는 구조로, 화재 시 2.5층의 천장에 붙은 스프링클러가 작동해도 아래층까지 물이 닿기 어려워 보였다.
이는 쿠팡물류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해에만 전국에 1000㎡ 이상의 물류창고가 700개가 넘게 늘었지만, 소방 방재(防災) 대책은 느슨했고 오히려 컨베이어 벨트 등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일부 규제가 완화됐다.
예컨대 현행 건축법에선 방화구획을 1000㎡로 규정하지만,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됐을 땐 최대 3000㎡까지 완화해 준다. 화재가 난 쿠팡 덕평물류센터의 경우 방화구획을 최대 1만㎡으로 정했다.
◇휴대폰 반납, 휴식공간 없어…후진국형 근로환경이 사고 위험 키워
오후가 되자 집중력이 흐려졌다. 제대로 쉬지 못해서다. 8시간 동안 주어진 휴식시간은 점심시간 50분을 제외하고, 오후 쉬는 시간 20분이 전부였다. 점심시간엔 작업장과 식당을 오가는 데만 30분 이상을 할애했다.
일부 사원은 휴식시간을 벌기 위해 센터 밖에 돗자리를 깔고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일주일째 근무 중이라는 한 사원은 “다른 공장은 2~3시간 일하면 쉬는 시간을 10~20분 주는데, 여긴 오후에 한 번 20분 주는 게 전부”라며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 점심을 싸왔다”고 했다.
센터 안과 밖의 휴게공간은 매우 협소했다. 층마다 휴게실이 있었지만, 수용 인원이 40~50명에 불과해 나머지 사람들은 센터 밖 도로에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화단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휴지통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흡연구역이 만들어졌고,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쌓였다.
쿠팡물류센터에 출입하기 위해선 휴대폰과 스마트워치 등의 소지품을 사물함에 보관해야 한다. 휴대폰을 보며 일하면 사고가 날 수 있어서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작업자에게 의지할 곳은 관리자와 주변 사원들 뿐이었지만, 작업자 간 소통은 거의 없었다.
다른 사원과 1m 내 거리에 있기라도 하면 PDA에선 ‘주변 동료와 가까우니 떨어지라’는 알림이 울렸다. 코로나19 이후 생긴 기능이다. 이렇게 8시간 꼬박 일하고 손에 쥐어진 하루 일당은 세전 6만9760원이었다. 정확히 최저시급(8720원)이었다.
◇화재는 ‘예방’이 최우선…전담 소방안전관리자 필요
여러 물류센터에서 일해본 근로자들은 그나마 서울복합물류단지에 입주한 쿠팡서울물류센터는 관리가 잘 된 편이라고 했다. 물류업체 한 관계자는 “쿠팡 덕평물류센터처럼 이커머스 업체가 직접 짓고 운영하는 곳은 더 관리가 안됐을 것”이라며 “세들어 살면 집주인 눈치를 보지만, 집주인은 눈치 볼 곳이 없잖나. 아무래도 안전보다 실적이 우선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류센터와 같이 화재에 취약한 건물엔 ‘예방’이 최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다수의 물류센터에서 작업 관리자가 소방 안전이나 코로나19 예방 등의 관리를 겸하기 때문에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물류센터엔 건물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일용직 사원이 많아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소방안전관리를 전담하는 관리자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과 함께 물류센터에 필요한 노동 인력도 늘고 있다. 물류센터는 냉·난방시설도 없이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고 알려졌지만, 특별한 기술이나 면접 없이 바로 일할 수 있고 급여가 빨리 지급되기 때문에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선호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화재나 과로 등으로 인한 사고가 늘고 있어,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와 4차 산업혁명이 결합돼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그 뒤에 플랫폼 노동자들의 가혹한 근무환경이 있다는 건 문제”라며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