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해안 절벽 등이 그려내는 절경, 경상남도 통영이 그려내는 풍경은 다채롭다. 대체로 잔잔한 바다지만, 한산도와 매물도 인근처럼 지형에 따라 물살이 거세지고 파도가 높아지는 곳도 있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 통영을 하나의 지형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거세던 물결이 금세 잠잠해지곤 하는 이곳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솟는다.
통영의 진짜 매력은 식탁 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놓인 지리적 특성은 두 지역의 식문화를 한데 모았고, 바다에는 사계절 내내 굴, 멍게, 참돔, 장어 같은 제철 해산물이 넘쳐난다. 여기에 일본을 비롯한 외국과의 오래된 교류가 더해지며 통영의 맛은 경계 없이 넓고 깊어졌다. 단순히 ‘맛있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칠맛이 있다. 지역 사람들은 그것을 ‘게미’라고도 한다.
게미란, 쉽게 말하면 ‘있어야 할 맛’이다. 짭조름한 간 끝에 남는 여운, 입안에서 한참 머무는 단맛의 그늘 같은 것. 그리고 이 게미의 맛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장호준 셰프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통영 출신 임을 힘 있게 말한다. 어쩌면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게미를 아는 사람’ 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릴 적부터 통영의 해산물로 밥을 먹고 자랐다. 식당을 운영하던 어머니 덕에 ‘맛’을 일찍이 깨우친 편이다. 맛을 내는 일보다 재료를 다루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먼저 매료됐다고 했다. 음식이란 결국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감각이 그의 첫 번째 요리 수업이었다.
요즘 그가 빠진 것은 갑각류, 특히 게다. 딱딱한 겉모습과 다르게 부드러운 속살, 내장에서 느낄 수 있는 바다의 풍미 등, 그가 빠지게 된 이유다. 굉장히 매력적인 식재료지만, 손질이 번거로워 외면받는 것이 안타깝게 봤다. 그래서 맛있는 갑각류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성수동에 ‘네기 라이브’를 열게 됐다.
갑각류를 테마로 한 이 식당은 이름만큼이나 재료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대게, 킹크랩 같은 재료를 눈앞에서 손질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먹는다’는 경험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라이브라는 이름과 맞게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또한 게의 껍질과 내장, 살의 풍미를 점점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조리법은 기승전결과도 비슷하다. 제철 재료를 더해 계절감 또한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번 봄 메뉴 ‘주꾸미와 피조개 스미소무침’은 그 좋은 예시다. 55도에서 저온조리한 주꾸미는 탱글하고, 피조개는 입안에서 바다의 향을 은은히 밀어낸다. 거기에 고소한 노른자, 백된장, 식초와 연겨자가 들어간 스미소 소스가 더해지며 한입 안에서 봄이 차오른다. 와사비 꽃의 톡 쏘는 향은 해산물 특유의 비릿함을 눌러주고, 구운 잣의 고소함이 그 여운을 남긴다. 겉으론 선선하지만 속은 상큼하고 따스하다. 통영의 봄이 꼭 그런 것처럼.
또 다른 메뉴인 ‘대게 구이와 뵈르블랑 소스’는 육지와 바다가 맞닿는 지점에 선 듯한 요리다. 대게는 숯불에 구워 껍질에서 은은한 향이 배어 있고, 그 위에 버터와 표고, 양송이로 만든 소스를 올려 땅의 맛과 바다의 맛을 함께 보여준다. 소스 속 식초의 산미는 버터의 무게를 덜어내고, 대게 살은 입안에서 바스러지듯 부드럽게 사라진다. 직관적인 조합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맛으로 설명하자면, 그것도 분명 ‘게미’다.
앞으로도 장 셰프가 추구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하지만 힘 있고, 직관적이되 결코 가볍지 않은 요리. 속칭 ‘게미’가 있는 음식 말이다. 물론 그 안에는 고향 통영의 풍경과 식재료가 함께 할 것이다. 귀띔하자면 그는 통영에 바다장어를 주재료로 한 업장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언젠가, 통영의 그 바닷가 어디쯤에 말이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장호준이라고 한다. 요리 경력은 한 20년 가까이 됐다. 일본 요리를 주로 해왔다. 고향이 통영이다 보니 한식, 일본 수사 집 등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요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늘 언제나 풍부한 먹거리 속에서 지내왔던 것 같다. 또 어릴 적부터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할아버지가 목공이셨는데, 집에 가면 나무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음식의 매력에도 빠지게 됐는데, 사실 맛보다는 색감에 더 신경 쓴 것 같다. 만든다는 행위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 같다.”
―통영 요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좋은 식자재가 정말 많다. 그래서 언제나 그립다. 해산물이 풍부하다. 뒤돌아보면 그 당시엔 귀한지 몰랐는데, 요리 쪽에서 일하다 보니 정말 좋은 것들을 먹고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따뜻한 지방이다 보니까 음식 자체에 염도가 높다. 거기서 오는 감칠맛도 느낄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젓갈, 액젓 등을 생각하면 쉽다.”
―네기 라이브는 어떤 곳인가.
“네기 라이브는 내가 조리사로서 욕심을 내고 싶은 공간이다. 워낙 잘하는 분들이 많아 이 콘셉트를 정하는 데 고민을 깊게 했다. 비싼 갑각류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싶다. 대게, 킹크랩 이런 갑각류 외에도 계절성 재료와 신선한 야채의 매력도 보여주고 싶다. 또 재료 손질부터 조리까지 전부 보실 수 있다. 게를 잡는 광경이 흔하진 않기에 손님들도 좋아하더라. 단순히 먹는 곳이 아닌, 하나의 공연을 본다 하고 즐겨주시면 좋겠다.”
―갑각류의 매력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그 향이다. 그 향의 풍미가 임팩트 있지 않나. 다만 단점은 발라 먹기 귀찮다는 것이다. 그런데 네기라이브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전부 다 발라서 드린다. 갑각류는 또 살, 내장, 껍질이 주는 각 풍미가 다르다. 살은 고소하고 부드럽지 않나. 내장은 그 감칠맛이 엄청나다. 껍질도 구워내면 향이 배가 된다. 하나로부터 여러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그 매력 아닐까.”
―음식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받는가.
“일단 그림을 많이 본다. 만약 요리책이라 해도 내가 이탈리아어, 불어 등을 알아듣기엔 힘드니, 거기에 담긴 사진 등을 많이 본다. 이걸 토대로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바꿔볼까를 고민한다. 어떤 식감을 낼지, 어떤 소스를 쓸지 등 말이다. 다만 요즘은 좀 단순해지려 한다. 어릴 적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도록 복잡하게 생각했다면 이젠 덜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요리를 개발할 땐 어떤 점을 주안점을 두고 있는가.
“일단 맛있어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그 기본을 제외하면 이미지, 색, 플레이팅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은 단순히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시각, 후각, 촉각 다 중요하다. 특히 눈으로 먼저 보게 되니, 시각을 충족시키는 것에 신경을 쓴다. 결국,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웃음)”
―요리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요리사라면 맛없는 부위도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맛있게 만드는 것은 다 할 수 있다. 도미를 예로 들어보면 뱃살은 맛있는 부위이기에 잘 구워내기만 해도 된다. 그러나 꼬리, 내장 이런 부분은 여러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부위도 맛있게 잘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진짜 요리사 아닐까.”
―장호준의 요리는 어떤 특색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짭조름한 맛을 좋아한다. 염도에서 오는 감칠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경상도에서는 방언으로 이것을 ‘게미’가 있다, 없다로 표현한다. 그 게미를 느끼게 하고 싶은 게 내 요리다.”
―삶과 닮은 메뉴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통영의 시락국(시래기를 이용한 국)이 떠오른다. 시락국을 보면 부추, 김, 제피, 간장 양념 등을 마음대로 넣을 수 있다.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온 것 같은데,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바꿔온 것 같다. 그런 모습에서 닮지 않았나 싶다. 또 업장에서 시락국을 시키면 대개 빨리 나온다. 성미가 급한 것과도 좀 비슷하다. 통영의 구수한 이미지도 내 외면에서 느껴지지 않나. (웃음)”
―지금까지의 여정은 1~10으로 친다면 현재 어디까지 왔는가.
“한 3~4 정도인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는 너무 힘들게 온 것 같다. 나머지는 좀 여유 있게 올라가고 싶다. 여러 창업을 거치며 너무 강박적인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가장 좋아하는 재료는 무엇인가.
“바닷장어를 좋아한다. 바닷장어는 통영을 대표할 수 있는 메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통영에서 관련 업장을 낼 계획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맛 보이고 싶다. 또 베트남 호찌민 쪽에 한식 ‘핫팟(hot pot)’을 열까도 고민 중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닭 한 마리라는 메뉴를 주제로 현지화 시켜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마지막 한 마디 부탁드린다.
“외형은 거칠지 몰라도 귀엽게 봐줬으면 좋겠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유튜브도 시작했다. 캠핑장에서 마주치더라도 음식을 해줄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기 위해서다. 따라서 매장도 좀 편안하게 만들고 싶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