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외로움부’ 장관을 신설한 영국은 정신 건강에 선도적인 관심을 기울여온 나라다. ‘IAPT’라는 효과적인 ‘심리치료 접근성 향상 서비스’로도 알려져 있다. 2008년 출범한 영국의 심리치료 접근성 향상 서비스(Improved Access to Psychological Therapy·IAPT)는 과학적·임상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심리치료 모델이다. 이는 국가가 직접 나서 국민 정신건강 개선에 나서 지역 센터에서 손쉽게 심리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이다. 우울증과 불안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인지행동치료에 기반을 둔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IAPT가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2013년 40만명이 치료받았고, 치료받은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건강을 회복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을 비롯한 세계 각 국에서는 자국 상황에 맞춰 손을 봐 도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개시한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도 여기에 기반을 뒀다.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극찬한 IAPT는 과연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효과를 불러왔을까.
신간 ‘심리치료는 왜 경제적으로 옳은가’는 IAPT를 설계하고 정착시킨 두 주인공이 쓴 책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노동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 런던정경대 명예교수와 데이비드 클라크 옥스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공저다.
그동안 심리치료를 단순히 ‘도덕적으로 온당하기 때문’이라거나 막연히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으로 권장해왔다면, 이 책에서는 심리치료의 ‘사회적 이득과 경제성’에 집중한다. 책에서는 심리치료를 위한 정책적 투자가 치료받은 사람이 일자리에 복귀함으로써 세수를 늘리고, 복지 비용을 줄여 재정에 이중으로 도움을 준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IAPT를 고안하고 영국에 정착시킨 두 학자는 심리치료를 위한 정책적 투자가 세수를 늘리고 복지 비용을 줄여 재정에 이중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책의 1부 ‘무엇이 문제인가’에서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신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와 똑같은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정신질환이 환자와 주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또 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 및 고통의 규모를 알려준다.
2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손실에 맞설 방법을 살펴본다. 여기서는 효과적이고 믿을 만한 치료법이란 게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떻게 개발됐는지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 효과를 내며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등을 다룬다.
저자들은 먼저 효과적이고 믿을 만한 비싸지도 않은 동시에 보전하고도 남는 치료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세계적 심리학자 아론 벡이 개발한 ‘인지행동치료’가 대표적인 근거기반 심리치료법 중 하나다.
정신적 고통도 신체적 고통과 마찬가지로 실재한다. 몸이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은 여전히 3분의 2 이상이 치료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13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새해 들어서도 극단적 선택 사례가 끊이지 않으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목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IAPT 이야기는 정신 건강의 위기를 정면으로 맞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요긴한 청사진이자 길잡이가 되어준다.
리처드 레이어드, 데이비드 클라크 지음|아몬드|472쪽|2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