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DB
한 번도 주식거래를 해본 적이 없는 ‘안전제일주의자’ 이윤지(여·31)씨는 요즘 증권사 상품을 살펴보는 데 빠졌다. 이씨가 관심 있게 보는 상품은 환매조건부채권(RP). 은행 예금처럼 정해진 기간 목돈을 맡겨놓으면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챙길 수 있는데,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도 연이율이 6~7%다. 상호저축은행의 특판보다도 높은 금리에 이씨를 비롯한 예테크족(예금+재테크족)이 몰린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면서 은행권의 정기예금 금리는 2%대로 떨어졌다. 저금리로 예·적금에 집중하는 투자자들은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은행권의 투자대기성자금은 수개월째 증가하고 있다. 대기성 자금으로 불리는 요구불예금 잔액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합계 지난달 말 기준 650조원을 넘어서면서, 전월 대비 25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갈 곳을 잃은 투자자금은 은행을 떠나 증권가로 몰리고 있다. 증권사에도 은행의 예·적금과 유사하지만 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상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환매조건부채권(RP)이다. RP는 증권사가 일정 기간 후에 다시 되사기로 약속하는 채권이다. 채권이라는 이름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상품에 가입하고 원하는 만큼의 돈만 넣어두면 끝이다.

RP는 매일 이자가 쌓이고 만기 시 자동으로 상환되는 단순한 구조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한다. 기초자산을 국공채나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상품이다.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한 수시입출금형, 1주일 미만에서 1년까지 보유 약정을 하면 더 높은 이율을 제공하는 약정형 상품 등이 있다. RP는 은행의 예금이나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한 파킹통장과 비슷한 상품이다. 최근 수시입출금형 원화 RP를 기준으로 주요 증권사의 평균 수익률은 연 2.25~2.5%로, 연 0.1~0.2% 수준인 시중은행 수시입출금 계좌보다 수익률이 훨씬 높다.

예금과 비슷하지만 훨씬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예금자보호가 안 되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이다. 은행이나 상호저축은행의 예적금상품은 만에 하나 은행이 망하더라도, 현행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최대 5000만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반면 RP를 비롯한 증권사 상품은 예금보험공사의 예금자보호대상이 아니다.

그래픽=손민균

다만 발행 주체가 주로 대형 금융사라 갑작스럽게 부도가 날 일은 매우 적다. 증권사에서도 위험도가 가장 낮은 상품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또한 RP는 단기 금리에 연동되기 때문에 기준금리가 낮은 요즘에도 예금 금리보다 좀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할 수 있다. 또 최근에는 대기성 자금을 붙잡기 위해서나, 가입 프로모션용으로 인터넷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과 협업해 고금리 특판 상품을 내놓는 증권사들이 생기면서 예테크족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시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1년 이내의 단기 상품이 많다. 일주일에서 3개월 내외의 단기 투자 상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돈이 오래 묶일 염려도 적다. 이 때문에 최근 요동치고 있는 미국 주식시장을 관망하고자 하는 투자자들도 잠깐 목돈을 굴릴 곳으로 눈여겨 보고 있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이 카카오뱅크와 제휴해 내놓은 RP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61일 동안 예치해두는 61일물은 연 7%의, 더 짧은 31일물은 연 2.7%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나증권이 토스뱅크와 연계해 판매 중인 수시입출금형 RP도 있다. 최대 가입금액 200만원에 세전수익률 연 6%로, 200만원 한도 내에서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한 파킹통장이나 다름없다. 다만 우대금리 6%는 3개월간만 적용된다.

특히 RP 중 외화로 사고파는 외화 RP의 경우 환율 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 최근 강세인 달러나 엔화로 환전해 RP를 구매하면 만기 시 올랐을 경우 이자와 함께 환차익까지 얻을 수 있는데, 비과세 대상이라 오른 만큼 그대로 수익으로 이어진다. 다만 외화 RP는 증권사별로 환전 수수료가 있어, 증권사별 환율 우대율을 비교해 보는 편이 낫다. 또한 환차익에는 세금이 없으나, 이자 수익에 대해서는 여타 투자상품처럼 이자소득세(15.4%)가 부과된다.